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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l 16. 2020

이제는 아침이 괴롭지 않다

아침 일찍 눈을 떠도 행복한 적은 또 있었다.


뺑뺑이에 밀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7시에 시작하는 아침자습에 늦지 않으려면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신 어머니가 방문을 열면, 작은 흰갈색 형체가 순식간에 뛰어 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내 얼굴을 핥았다. 아침의 피로를 느낄 새도 없이 벅찬 행복으로 눈을 떴다. 이 몽실몽실하고 귀여운 녀석과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고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내 아침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잠에서 깨는 건 한 달 내내 비를 맞은 나무토막에 불을 붙이는 일과 같았다. '일어나야 되는데'를 열 번쯤 외다 보면 그게 자장가가 돼서 시 눈이 감겼다. 늦잠을 자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뜨고 세상과 마주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어차피 죽으면 실컷 잔다'며 효자손으로 등짝을 후려갈기곤 했는데, 여기 와서 나 좀 때려주세요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내 옆에 작고 투명한 누군가 누워 있었다. 완전히 긴장이 풀린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장면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코와 입에서 빠져나온 따스한 날숨이 온 방을 채웠다가 다시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두 다리 사이에 껴 있는 하얀 쿠션과 침대에서 반쯤 흘러내린 인견이불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제 힘든 아침은 끝났다고.

네 아침은 다시 밝아질 거라고.

어떤 가수는 함께 숨 쉬는 자유가 사랑이라 했고, 어떤 시인은 상처 입은 한 마리 짐승을 속에서 키우는 것이 사랑이라 했다. 내게 사랑은 단순하다. 매일 아침 내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작고 귀여운 발가락을 바라보는 일이다. 씻으러 가기 전 딱 5분만, 그녀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어떤 하루가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


내 아침은 다시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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