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난한 마음으로 쫓기며 살지만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걸 구분할 수 있다.
아버지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기업에 입사해 임원이 됐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당신은 매일 건강을 팔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를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당뇨가 찾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성격이 날카로워져 신경질과 짜증으로 가득한 사람이 됐다. 문학과 스포츠 같은 취미는 즐길 시간이 없어 긴 겨울잠에 빠졌고, 정년퇴직 이후에야 깨어났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회사일과 공부에만 매달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나와 난 그런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에게 항상 고마워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은 매일 스스로를 검열하게 했다. 조금의 실수도, 게으름도, 만족도 누려선 안 됐다. "아빠 눈치 보느라 숨도 못 쉬겠어." 고순이를 끌어안고 웅크리곤 했다. 물론 그때도 알고는 있었다. 아버지는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버티고 있다는 걸.
부모님은 IMF 때 졌던 그 많은 빚을 다 갚았고, 2008년을 휩쓸고 지나간 금융위기도 버텨냈다. 덕분에 우리 남매는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다 했다. 어릴 적 우리집은 분명 넉넉하지 않았는데 누나와 난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 아버지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게 있다 하면 바로 지갑을 챙겼고, 어머니는 집안일과 일을 병행하는 와중에 교육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자식일 땐 부모님이 내게 주지 못한 것들만 눈에 보였는데, 가정을 이루고 나니 부모님이 내게 준 것들이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나 보인다.
그러나 부모님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느라 자식들의 마음까지는 보듬지 못했다. 당연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정신없었던 당신은 행복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자식이 무언가를 성취할 때만 조건부 행복을 느끼던 아버지는 내가 직장을 관둔다 했을 때 부자간의 연을 끊자고 했다.
내가 당장 불행해서 죽을 것 같다는데 어쩜 자식의 마음을 이렇게 모르실까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다시 자릴 찾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겠다 하셨다. 안전한 길을 스스로 걷어차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아직 난 모른다. 다만,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겁나게 쓰렸을 거라고만 짐작될 뿐이다.
자식을 통해서만 기쁨과 슬픔을 얻는 부모님을 보며 자란 우린 우리의 삶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여기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행복이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거라고 믿게 됐다. 건강하고, 바르고, 성실한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주말에 늦잠을 자고 있자면 마음이 불안해 책이라도 꺼내게 됐다. 우린 있는 그대로 우릴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부모님의 과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당신들은 그 어려운 일을 당당하게 해냈다. 우린 그 과실을 온전히 누렸으나 여전히 가난한 마음으로 산다. 땀을 뻘뻘 흘리는 것만으로 계층이동이 가능했던 시대는 지났고, 집값과 대출에 쫓긴다. 그러나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하진 않게 됐고, 우리가 받은 것과 받지 못한 것이 무언지,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게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거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결핍감과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에 쫓기는 삶을 청산하고 넓은 마음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듣는 거다. 당신들의 삶이 그러했듯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태도는 이미 우리의 살이 되었으니, 필요한 건 오직 욕망의 방향과 책임의 무거움을 균형 있게 직시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정직하지 못한 세상에서 지혜롭게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거다.
그래야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내 아이에게도 진심으로 사는 게 좋아서 사는 부모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우릴 보고 자라난 너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