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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l 27. 2021

그만두고 이직준비 vs 다니면서 이직준비

이직을 결심한 중고신입들이 부딪히는 최대 난제가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준비에 집중할지, 직장생활과 이직준비를 병행할지의 문제다. 어차피 다시 신입으로 입사할 걸 생각하면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너무 아깝. 이왕 마음먹은 거 하루빨리 이직준비에만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패기 있게 사표를 냈다 공백기가 길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2년 전에 퇴사한 고대리가 여태 백수라는 얘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난 첫 번째 이직은 회사를 나와서 준비했고, 두 번째 이직은 다니면서 준비했다. 두 번째 이직준비는 결혼 뒤 시작했기에 회사를 그만두는 옵션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싱글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확신한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올인할 깜냥이 안 된다는 걸 첫 번째 이직준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둘지 말지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나의 멘탈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져도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내 갈 길을 가는 게 낫다. 하지만 회사 밖에 나오기 전까진 회사라는 굴레가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으니 문제다. 퇴사의 행복은 잠깐이고, 다음 직장이 정해질 때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밀물처럼 밀려온다. 처음부터 쭉 백수였던 것과 회사를 다니다 백수가   압박감의 차원이 다르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있다면 멘탈을 잡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것을 집어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 사람은 없다. 취업시장은 매년 역대 최악의 타이틀을 갱신하고,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나같이 특별한 전문성 없는 문과생들은 더욱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퇴사를 다시 생각해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면 시작도 전에 자신감이 바닥난다.


 상황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건 오직 자신의 몫이다. 내가 불확실한 상황을 감당할 멘탈이 되는지, 주변 사람들의 우려에 흔들리지 않는 곤조가졌는지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로소 퇴사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러나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됐다고 바로 사표를 낼 순 없다. 우린 이제 냉정하게 퇴사의 필요성을 가늠해야 한다.




목표가 어디냐에 따라 거취는 달라진다.



직종과 무관하게 더 나은 조건의 회사가 목표라면 지금 회사에서 직무경험을 쌓는 게 낫다. 자소서나 면접에서 활용할 소스가 가만히 있어도 굴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공채 규모가 줄고 직무별 수시채용이 늘어나는 요즘, 축적된 직무경험은 소위 "경력 같은 신입사원"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도움된다. 다음 직장을 위해 튜토리얼 한다는 마인드로 회사를 다닐 수 있으니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도를 넘은 헌신도 줄일 수 있다. 면접 때 공백기에 대해 변호할 필요가 없다는 이점도 크다.


목표가 금융공기업처럼 필기시험의 장벽이 높은 곳이라면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 cpa나 고시를 준비하다 넘어온 고인물도 수두룩한 마당에 애매하게 공부해선 필기의 문턱을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상 회사를 관뒀다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 절충안으로 공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퇴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경영학을 준비한다면 일반경영, 중급회계, 재무관리 기본강의까진 회사와 병행하며 끝내고 퇴사 후에 고급회계, 연습서, 객관식 강의를 돌리는 식으로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 논술도 보는 회사라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꾸준히 신문기사나 유튜브 경제채널로 기초지식을 쌓다가 퇴사 후 스터디에 가입해 집중적으로 글쓰기 훈련을 할 수도 있다. 목표 기업에서 요구하는 자격증들도 미리 따두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직무경험과 공부량 모두를 갖춘 백수만큼 무서운 경쟁자는 없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건 현실적인 여건이다.



회사를 관뒀을 때 자칫 길어질 수 있는 공백기를 버틸 수 있는 경제력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최소한 1년은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모아야 온전히 이직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는 건 독이다. 퇴사할 때의 단단했던 각오가 물러지기 쉽고, 나이 먹고 부모님 도움을 받는다는 부담감에 눈에 차지 않는 직장에 서둘러 들어갈 위험도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릴 하지 않아도 되는 준비가 됐을 때 사표를 내는 게 현명하다.


회사생활과 이직준비를 병행하고자 한다면 공부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갑작스러운 회식이나 야근이 계획을 망치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을 쪼개 효율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난 평일엔 네 시간, 주말엔 여덟 시간 공부를 목표로 했는데 지하철과 통근버스에서 인강을 보고, 점심시간엔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며 공부량채웠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회사 당직실에 몰래 갈아입을 속옷과 세면도구를 갖다 놓고 근처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했다. 


이처럼 상황에 맞게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학생 때처럼 엉덩이 무겁게 공부하는 건 주말에만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직장생활과 이직준비를 병행한다면 주머니엔 항상 미니 요약노트를 넣어 다니고, 핸드폰으로 틈틈이 자소서를 써야 한다. 그렇게 자투리시간을 차곡차곡 모아야 이직준비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회사를 다니며 이직준비를 하든, 회사생활과 이직준비를 병행하든 둘 다 쉬운 길은 아니다. 많은 걸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다시 말해, 지금 직장이 힘들다고 충동적으로 뛰어든다면 시행착오와 더 큰 고통만 따르기 쉽다. 저마다의 상황에 맞는 길을 지혜롭게 택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다음 이직준비에 매진했음 좋겠다. 이왕이면 짧게 끝나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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