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지는 글은 쓰지 말자
올해 초 결심한 일이다. 내게 글쓰기란 언젠가부터 한풀이에 지나지 않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금부턴 희망이 없는 글은 쓰지 말자. 자꾸 꺼내 보고 싶은 글만 쓰자.
그 결과 반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 썼다. 이상할 정도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안 들었다. 희망이 담긴 글을 쓰려면 나부터 즐거워야 하는데 일상에 치여 숨 가쁘게 사느라 그런가 싶었다. 결국 '마감'과 '원고료'라는 마법의 힘을 빌려 공제보험신문의 칼럼만 써왔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올린 글을 봤다. 2~3년에 한 번 '귀양살이'라고 부르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는 친구였다. 이번에도 휴가를 내고 타지에서 좋아하는 일만 했다는데, 그 종류가 인상 깊었다. 본인 허락 없이 인용하자면 "책, 술, 차, (익숙한) 음악, 햇빛, 초록초록한 것들, 풀냄새, (안에서 바라보는) 비, 커다란 물 (수영)"이 그것이었다.
언제부턴가 난 생산적인 일에만 몰두해 왔다. 두 번의 이직으로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자격지심,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추동력은 놀라우리만큼 효과적이었다. 조금이라도 몸이 편하면 죄책감에 책상 앞에 앉게 됐고, 깊게 잠들지 못해 일찍 깼다. 회사에선 불쾌한 말을 들어도 속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그럴수록 자존감은 낮아졌다. 자기애를 담보로 빌린 추동력은 사채와도 같아서 웬만한 결과물로는 이자도 갚기 버거웠다. 언젠가 원본을 완전히 먹혀버리기 전에 이놈의 실체와 대면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그게 끝나면 또 다른 과제를 해치워야 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힘 빠지는 글을 쓰지 말자는 다짐은 슬프게도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글을 쓰는 시간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버린 탓에 "쓸모"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다름 아니었다. 쓸모 있는 글이란 남들이 많이 찾는 글인데 귀한 내용을 담을 깜냥은 안 되니 분위기라도 밝은 글을 쓰기로 한 거다.
친구는 귀양살이를 통해 익숙한 자극을 끊어내고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덕에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난 그가 앞으로도 지혜롭게 삶의 방향을 조정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난 귀양살이 없이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생각해보면 그건 글쓰기 덕이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키보드 앞에서 손 가는 대로 두드렸다. 그 덕에 내가 느끼는 괴로움에 걸맞은 이름표 - 자격지심, 후회, 열등감 등등 - 를 붙여줄 수 있었고, 그게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낭비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나를 감출 필요가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내 안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정체모를 덩어리와 마주하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이다. 그래야 싸워서 이기든, 담담하게 받아들이든, 우리의 노선을 정할 수 있다. 그러니 결국 쓸모없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잠시 방치했던 공간을 다시 가꿔보려 한다. 내게 글쓰기란 남들에게 보여주기 이전에, 내 속살과 대면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가기에 지면에서만큼은 솔직하고 싶다. 내 초라한 부분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도 모두 껴안으며 살고 싶다.
당신도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면, 무심코 방치해 두었던 나만의 공간이 있지 않은지 찾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공간을 쓸모로 재단하는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란다.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다. 당신에게 이로운 일은 타인에게도 이로운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