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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y 26. 2022

회식 전 챙겨야 할 보험 두 가지

거리두기가 끝나고 술자리가 잦아졌다.


2년이 넘는 거리두기에도 명백을 유지한 인연들은 강남에서 광화문에서 홍대에서 끈질긴 우정을 기념했다. 그리웠던 안주들과도 눈물의 상봉을 했다. 곱창, 양꼬치, 닭발 그리고 돼지껍데기는 기분 좋은 냄새로 지글대며 우릴 반겼다.


동시에 반갑지 않은 술자리도 다시 시작됐다. 바로 회식이다. 함께 술에 젖어야 진정한 우리 편으로 인정한다는 유구한 전통은 죽지도 않고 살아났고, 동기들은 월요일이고 금요일이고 술자리에 불려갔다.




제법 나이를 먹어서일까. 지금은 예전만큼 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이십 대 후반에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땐 “라떼는” 레파토리를 새벽 두 시까지 들어야 하는 술자리가 지독하게 싫었다. 소중한 개인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지금은 회식이 잡히면 “맛있는 거 먹겠네” 하는 생각만 든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평소 정시퇴근을 하는 덕분일까. 어쩌다 있는 회식 자리는 오랜만에 야근하는 날이라고 쿨하게 인정하게 됐다. 야근수당은 현금 대신 현물로 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여기에 두 가지 보험만 더하면 완벽하게 회식을 즐길 수 있다.


첫 번째 보험은 초코우유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금방 취해 어떤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 미리 배를 채워놓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혼자 나가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공깃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초코우유는 간편하게 배를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다. 알코올 분해를 돕는 성분까지 풍부하다고 한다. 음주 전에 컨디션 같은 숙취해소음료를 미리 먹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지만, 반강제로 끌려가는 마당에 오천 원이나 쓰면 현타가 올 수 있다. 여러모로 초코우유를 미리 마셔두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다.


두 번째 보험은 마인드컨트롤이다. 고깃집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생각한다. “난 회식이 아니라 4D로 ‘응답하라 1988’을 보러 온 거다.” 회식은 평소 MZ세대 눈치 보느라 입조심하던 옛날 분들의 고삐가 풀리는 자리다. 선을 넘는 발언들로 욱하지 않으려면 야만의 시대를 살아온 저들의 스토리를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로 인식하는 자기기만의 자세가 필요하다.


눈은 스크린, 아니 부장님을 향하되, 온몸의 감각은 혀 속에서 부드럽게 녹는 오겹살에 집중한다. 온몸을 희생하고도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공을 티 내지 않고, 덕분에 죄책감 없이 미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故 제주흑돼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평화롭게 드라마를 보며 혼자 맥주를 홀짝이는 기분에 젖는 것이다.




3차까지 달리고 집에 가는 길에 어린 동기가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형은 왜 술자리에서까지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긴장한 게 아니라 젠틀한 거라고 응수하지만, 감추고 싶던 본모습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하다. 난 속으로 이렇게 답한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고. 이십 대인 너는 자유가 편하겠지만, 지금 난 자유롭다고 느끼면 오히려 불안하다고. 그래서 몸도 마음도 보험을 따로 준비해야 안심이 된다고 말이다.


오늘도 실수 없이 술자리가 끝난 것에 안도하며, 다음 회식도 아무런 에피소드 없이 지나가길 바라본다.



한국공제보험신문 '2030보험라이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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