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강을 걷기 좋은 날씨가 찾아왔다. 아직 강바람이 차지만 주머니에 넣은 캔커피의 온기만으로 쉬이 견뎌지는 수준이다. 퇴근 뒤 지하철 대신 한강변에 들어서면 세상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사무실에서 절박한 이들의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듣다가 귀를 막고 사라지고 싶어지는데, 바로 근처에 도망칠 곳이 있으니 다행이다.
하염없이 집 쪽으로 걷다 잠시 강 건너를 바라보면,
홍시에 밀가루를 뿌린 것 같은 하늘 아래 뾰족하게 솟은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그곳에 나의 첫 직장이 있다. 타워가 완공되기 전에 이직을 했음에도 향수를 느끼는 건 동기들 때문이다. 저 층에는 경민 형이, 저기선 이소담과 왕자가 일하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좋아한 친구는 아마도 저들이 마지막일 거다. 삼십 대 중반인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을 줄지 미리 한계를 정하고 사람을 대하게 됐다. 앞으로 너와 나 사이에 생길 이해관계가 어림 잡혀 계산적으로 힘조절을 하는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남에게 줄 마음이 작아졌다. 지금은 남을 좋아하기는커녕 나를 싫어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유쾌한 사람만큼 불유쾌한 관계도 많았기에 점점 방어적이 되어 간다. 맨 마음을 내보였다 세게 데인 경험이 쌓여 "적당한 게 최고야"라는 이름의 훌라후프를 붕붕 돌리며 경계하고 사는 느낌이랄까. 신입사원만 7년째라 생존을 위한 을로서의 저자세가 체화된 건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다시 롯데월드타워를 올려다보면 찝찝한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지니 신기할 뿐이다. 문득 떠올라 몇 개월 만에 카톡을 보내도 과한 추임새 없이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족하다. 서로 세월에 바빠 직접 마주해 얘기 나누는 시간은 줄어가겠지만, 살면서 내가 좋아했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저쯤에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강에 취했든 옛기억에 취했든, 맥주 없이도 제법 알딸딸해진 걸 보니 가성비 좋은 음주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추워서 입 돌아갈 것 같으니까 빨리 집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