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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Nov 13. 2021

사촌 형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죽었다

사촌 형이 뇌사판정을 받았다. 화이자 1차 접종을 맞고 이틀 뒤 일어난 일이었다. 형은 팔 저림과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뇌사 상태였다. 22개월 된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기억할 대상을 잃었다.


모더나 2차 접종을 맞고 나오는 길에 들은 소식이어서일까. 충격 다음에 이어진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내 몸에 흐르기 시작한 이 물질이 조만간 나의 삶도 끝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코로나가 더 이상 우리 삶을 뒤흔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았다. 일터에선 매일 코로나로 삶의 기반이 무너진 이들을 만나고, 가까운 가족은 코로나 피해업종인 요식업을 한다. 대면 업무를 하는 내가 혹시라도 아내와 어린 조카, 부모님께 코로나를 옮기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럼에도 백신 접종을 최대한 미뤘다.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 뚝딱 튀어나온 백신이 도무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코로나는 방역수칙을 지키며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만 백신 부작용에 대처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안전성이 검증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회사에선 전 직원들에게 백신 접종 일정을 작성해 제출하게 했고 "백신 언제 맞아요?"라며 안부인사를 대신했다. 임원들은 사내 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며 재택근무 도입을 막았지만, 백신을 맞지 않는 직원들을 무책임하다고 욕하며 압박하는 것으로 정부 정책에 호응했다.


나를 빼고 모든 부서원이 접종을 완료했을 때 나도 백신을 예약했다. 덕분에 공동체 정신이 결여된 직원 이미지는 벗었지만, 접종 후 열흘이 넘도록 심장을 찌르는 느낌이 계속됐다.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해 스스로 백신을 맞았으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막다른 절벽에서 내가 밀기 싫으니 알아서 뛰어내리라는 식의 강요를 받은 무력감을 느낀다.


백신 접종 사망한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정부는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아마도 기저질환" 스텐스만 유지한. 사망자 "개인"의 문제로 선을 긋는 것이다. 동시에 다중 이용시설에 백신패스를 도입해 미접종자들의 불이익을 강화하고 있다. 백신패스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를 일이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갈 때 사회 전체에 돌아오는 이익이 얼마나 큰지, 백신 부작용과 코로나 감염 중 무엇이 더 치명적인지는 모르겠다. 숫자 감각은 잃은 지 오래다. 사촌 형이 죽었을 때 내겐 "코로나 백신은 위험하다"는 것만 객관적인 사실이 됐다.


정부를 욕할 생각은 없다. 다수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공리주의는 정책을 집행할 때 피할 수 없는 준거점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코로나 백신의 효과를 논하며 백신 미접종자를 비판하는 개인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다름 아닌 개인들이 호응할 때 집단이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수단은 정당성을 얻는다. 아직도 군대식 권위주의 문화가 만연한 직장에서,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을 무책임하다고 손가락질하는 또래집단 속에서 소수의 안전은 묻힌다.


백신을 맞지 않는 선택에 대한 책임도, 백신을 맞은 뒤의 결과도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생명보험 약관을 다시 읽어보는 것밖에 없다. 운이 좋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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