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동호회에 가입할 용기

by 고라니

회사에서 가입한 동호회가 딱 하나 있다. 바로 독서동호회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하고, 다음 모임 때 감상평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점심시간에만 모이기 때문에 술자리가 없는 유일한 동호회다.


저번 모임에는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됐다.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이었다. 일 년에 한 번은 다시 읽는 최애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추천목록에 넣을지 말지 망설였다. 회사에 사적인 나를 드러내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냥 적당한 베스트셀러로 채울까 한참을 고민했다.






세 번의 직장을 거치며 회사에선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안 하게 됐다. 마음을 트고 지내는 직장동료 몇 명을 제외하곤 ‘노잼’에 ‘무색무취’로 인식되는 게 편했다.


회사라는 공간은 나의 취향, 가치관, 경제적 목표 같은 것들을 오픈했을 때 “너를 알게 되어 좋다”는 말보다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곳이었다. 이야기가 이상한 식으로 와전돼 곤욕을 치르는 일도 많았다.


물론 회사는 사람 사귀러 다니는 곳은 아니다. 돈 받고 일하는 공간이다. 문제는 직급에 따라 발언권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업무에 관해서야 회사에서 구른 짬밥 차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솔직히 나보다 선배들이 내는 의견이 맞을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술자리에서조차 직급순으로 발언권이 주어지니 환장할 일이다. 어떤 치킨을 좋아하는지 부장님부터 차례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편의 콩트를 보는 것 같다. 굳이 그 틈새에서 꾸역꾸역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고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빈 회의실에 앉아 차분하게 책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는 지금의 동호회가 좋다. 회사 말고 삶에 대해, 그것도 술 없이 맨정신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이곳이 유일하다. 정답 없는 주제를 논하면서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매력 있다.





<비행운>에 대한 감상평은 극도로 엇갈렸다. 너무 우울해서 후유증이 오래간다는 평, 오히려 희망과 의지를 느꼈다는 감상, 문장이 아름다워 천천히 읽었다는 이야기 등등.


다음번에 내게 또 책을 추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무난한 책보다는 진심으로 아끼는 책을 고를 것 같다. 단 한 뼘의 공간이라도 회사에 내 속살을 내보일 수 있는 자리가 있어 다행이다. 이 동호회가 오래오래 가길 바란다.



논객닷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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