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 외롭지만 안전한 거리 찾기

by 고라니

마포에서 홍어 삼합을 먹었다. 그동안 내가 먹어온 홍어는 홍어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강렬했다. 대만에서 도전했던 취두부의 풍미가 떠오를 정도였다. 취두부는 입에 들어가기 직전이 절정이라면, 홍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코를 진하게 적신다는 점이 달랐다.

같이 홍어집에 간 이들은 첫 직장 동기다. 회사는 겨우 2년을 다녔는데 동기들은 10년째 만나고 있다. 모쏠이었던 형은 가장 먼저 결혼해 아이가 둘이나 있다. 어떤 동기는 경쟁사로 이직하고, 어떤 동기는 공기업으로 이직했다.

'동기' 대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이들이 마지막이다. 눈치 보지 않고 칼퇴해 술 마시러 다니고, 주말에 회사 앞 공원에서 만나 줄넘기를 하던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계산 없이 속마음을 드러낸 마지막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도 인간관계도 서툴러 매일같이 부딪치기만 하던 초년생 시절의 유대감은 마치 홍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그땐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었다. 팀장에게 깨지면 전략팀 동기에게 찡찡댔고, 이유 없이 고독하면 회계팀 형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영업팀 누나에게 실없는 드립을 치다 보면 마음은 절로 풀렸다.

지금은 아니다. 회사에서 입을 닫고 산다. 내 슬픔은 약점이 되고, 내 기쁨은 시기가 된다는 걸 신조로 삼고서. 나를 오픈해서 더 가까워진 동료도 있지만, 가시 박힌 부메랑으로 돌아온 적이 더 많다.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 건 쉽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거리를 두게 됐다.

이런 생활에도 장점은 있다. 가까운 사람이 없기에 누추한 속살을 보여줄 일도 없다. 첫 직장 동기들에겐 미안한 일도 많았다.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고,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대처를 떠넘긴 적도 있다. 사무적인 관계가 디폴트인 지금은 서로 깔끔한 모습만 보일 수 있다.


외로운 대신 안전한 직장생활을 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감정을 절제하고 가치관을 배제하기 위해 모두 소리 없이 이를 악물고 있다. 그건 집단생활의 덕목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한때나마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그 시절 덕에 오늘도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이 오래된 추억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으로 내 삶에 오랫동안 함께 하길 빈다.


그리고 당신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논객닷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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