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 아침, 투표소에 가는 대신 공원에 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사이좋게 달리는 MZ커플도 보이고, 멈춰 서서 길가에 핀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아주머니도 보였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는 어르신 한 분이 한가로이 책을 보고 있었다. 새들은 지저귀고 하늘은 푸르렀다.
이 평화로운 광경을 보며 느낀 감정은 위화감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열된 분위기로 한껏 피로감을 느끼던 차였다. 온갖 어지러운 소식과 날 선 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갑자기 다른 세계로 넘어온 느낌이었다.
계엄령부터 탄핵, 대선까지의 반년은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급작스러운 선거이긴 했지만, 이번처럼 정책은 실종되고 네거티브로 점철된 적도 없던 것 같다.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쟁을 피할 순 없겠지만, 그래서 “왜 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런 상태로 선거가 끝나면 후유증이 오래간다. 서로 생채기가 깊게 남기 때문이다.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보통 사람들 이야기다. 정책으로 승부를 봤다면 그 정책이 잘 실현되는지, 효과가 어떤지를 검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오가는 비판은 더 나은 정책을 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네거티브가 대부분이었던 선거 후에는 부정적인 감정만 남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감정이입을 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대 후보를 지지했던 직장동료, 가족, 친구에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갈등과 분열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확산된다.
정치에 대한 혐오가 만연함에 따라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도 있다. 국민이 정치에 냉소적이 되면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진다. 개인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위험하고 불안한 세상 말이다. 정치와 내 삶이 무관하다고 믿는 세상에선 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한 정치체제인데, 피치자가 이미 치자이길 포기했기 때문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면서 머리를 비우고 투표소로 향했다. 그리고 이날 당선될 대통령에게 마음속으로 바랐다. 부디 선거 과정에서 생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힘써달라고 말이다. 그래야 본인을 지지했던 사람의 일상이, 그리고 그가 품어야 할 모든 국민의 일상이 평화를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