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동에서도 가장 비싼 아파트로 유명한 원베일리에서 결혼정보업체를 차렸다고 한다. 이 아파트에서는 일명 원결회(래미안원베일리 결혼정보모임회) 주관으로 아파트 입주민끼리 단체 소개팅을 갖곤 했는데, 최근 11호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 등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다. 이 기세를 몰아 ‘원베일리 노빌리티’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결혼정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학력, 직업, 소득 등을 꼼꼼하게 따져 회원을 선별적으로 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원베일리 안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해온 노하우를 살려 앞으로도 상류층끼리만 매칭한다는 컨셉이다. 가입비는 최대 1,100만원에 달한다. 상위 등급 대상으로는 상속 및 법률 상담까지 제공해 결혼 이후까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원베일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급 주상복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는 지난 7월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고 공지했다. 미혼 입주민끼리 자연스러운 만남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이러한 모임이 조만간 강남권 고급 아파트의 유행이 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녀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과 만나길 원하는 부모의 욕망, 그리고 감정적인 소모를 배제하고자 하는 자녀의 니즈가 만난 결과다. 아파트는 계급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굳어진 지 오래고, 거주자의 사회적 배경과 소득, 직업을 어느 정도 보증한다. 집값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단 내 순혈주의를 고수한 경우가 많다. 신라시대에는 성골인 왕족 사이의 혼인만 허용되기도 하고, 유대인 역시 이민족과의 결혼을 금한 바 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같은 카스트 내의 결혼만 허용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이처럼 같은 사회집단 내의 결혼을 고집한 데에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리스크 관리”다.
끼리끼리 결혼은 왕권 약화, 종교적 타락, 권력의 분배를 예방하는 데 기여한다. 오늘날 경제적 배경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목적도 비슷하다. 지금껏 쌓아온 자산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불려 나가는 데 도움 되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생길 수 있는 “악재”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집단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사회적 분위기가 발견된다. 마법사 사이에서 태어난 순수혈통을 우대하는 문화가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주인공 삼인방 중 하나인 헤르미온느는 항상 수석을 차지하는 명석한 학생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아닌 머글(비마법사)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별받기 일쑤다. 그런 그녀는 호그와트를 졸업한 뒤 가장 고귀한 순수혈통으로 꼽히는 위즐리 가문의 론과 결혼한다.
헤르미온느가 결혼정보업체에 1,000갈레온을 내고 소개팅을 했을까. 아니다. 그 둘은 치고받고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베스트 프랜드였다. 오랫동안 쌓인 시간은 서로의 못난 부분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줬다. 상대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에 미안해하고, 종국에는 약한 부분을 지켜주는 사이가 된다. 설렘도 조건도 아닌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 그들을 굳건한 관계로 만들어주었다.
“사람”에 대한 리스크는 돈으로 줄일 수 없다. 오래 연애를 하고 결혼해도 부부싸움을 이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각자의 삶만 책임지면 되던 시절은 끝나고, 함께 견디는 생활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지고 볶고 싸우며 전우애가 생기는 사람도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운이 나빠 불신과 증오만 남게 된다면 어떨까. 리스크를 피하려다 오히려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부딪쳐봐야 한다. 살짝 거리를 두고 원하는 조건을 탐색하는 것도 좋지만, 진흙탕을 같이 뒹굴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평가하고 감추는 사이가 아니라, 드러내고 감싸주는 관계. 난 헤르미온느와 론이 그런 관계를 유지했기에 지금도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사람은 부딪쳐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