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으로 인생역전 (5)
병원에서 퇴원을 안 시켜 주니 추석을 병원에서 보내게 됐다. 명절이니 시어머니께 전화는 한 통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놀라신다. 전화도 기대하지 않으셨나 보다.
"아구~ 아가야~ 몸은 좀 어떠냐."
"네. 괜찮아요. 아직 수술 부위에 물이 덜 빠져서 더 지켜봐야 한다는데 저는 운동도 하고 밥도 잘 먹고 있어요. "
"그래. 다행이다. 곧 물 빠질 거다. 우리 삼남이도 착하고 너도 착하니까 다 괜찮아질 거다."
"네."
"우리 삼남이 짠해서 어쩐대냐. 마누라 아프다고 기운이 얼마나 빠져 있을꼬."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아픈 아내를 둔 남자가 얼마나 불쌍한지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들로 이어졌다. 그러다 아차! 싶으셨는지 말을 뚝 끊으신다. 그 아픈 여자가 지금 통화 중인 며느리라는 걸 갑자기 깨달으셨으리라. 아프기 전에도 나는 당신 아들보다 더 편한 말벗이었다. 당신 아들이 겪는 고통은 곧 당신의 고통이었을 테고 그 고통을 말벗에게 그냥 터놓았던 게지. 그 말벗이 고통의 원인인 게 문제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가 당황해하시는 게 전해진다. 명절에 못 온다고 전혀 마음 쓸 필요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말을 더듬으신다. 마침 간호사가 소독하자고 부르니 얼른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괜히 드렸구나, 싶다. 시어머니가 꼴찌에 등극하실 것 같다.
아픈 자의 특권!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내가 혼자 살고 있지는 않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감동이 몰려온다. 명절이라 병실은 텅텅 비었고 병실에서 나 혼자 응원 메시지에 순위 매기기 놀이를 하며 놀던 중이었다. 센스 있는 위로와 응원을 하고 싶은 이여! 이 랭킹을 잘 봐 두시라.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에게 먼저 연락하지 못한다. 아픈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암이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암환자인 나도 다른 암환자 친구에게 잘 지내냐고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어려움을 뚫고 메시지나 전화가 왔다면? 무조건 메달권이다. 고맙고 장하다.
공동 3등 작품은 여럿이나 대표작 하나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부장님! 어떻게 지내셔요.
보고 싶어용.
부장님이 안 계셔서 많이 허전하네용.
할 말을 모르겠다면 안부를 묻는 게 정석이다.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잘 돌아갈 테지만 이렇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고 알려주는 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2등 작품은 이것이다. 만화책과 함께 이런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간이 훌쩍 가라고...
막 암진단을 받았을 때는 정말 시간이 훌쩍 지나기를 바랐다. 같이 앓는 자의 마음이겠거니 싶어 많이 고마웠다.
두구두구두구~~~ 1등 작품을 공개한다. 책 선물이 도착했는데 이런 메시지와 함께 왔다.
수술도 잘 될 거고,
회복도 잘 될 거고,
쉬면서 띵가띵가할 때
그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책
2등 작품은 글쓴이가 울고 있는 게 느껴져 나도 울어버렸었다. 반면 1등 작품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할 말을 다 하니 내 감정이 편안하다. 절묘하다.
나중에 퇴원 후에 남편이랑 같이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였다. 신장 수치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셨던 어머니는 당신 침상에 나를 앉히더니 내 두 손을 다 잡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아가야. 고생했다. 인자 직장 다니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 인자 절대로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 꼭~"
그렇게 하면 당신 아들이 혼자 돈 버느라 더 힘들 텐데 어쩌자고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일까. 돈벌이를 해야 할 사람이 당신 아들인 것은 순간 잊어버리시고 눈앞의 말벗만 생각하시는가 보다. 어쩌지? 시어머니를 랭킹 1위로 올려야겠다.
from 49세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