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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Aug 23. 2024

05 독자의 발견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5)


    어제 글쓰기 클래스에 다녀온 뒤로 기분이 ‘흐림’ 상태다.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합평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내 글을 낭독하고 나자 로그 님이 말을 꺼낸다. 로그 님으로 말하자면 수년간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고 글쓰기 클래스에서도 안정적인 글솜씨를 보이는 이다. 교수가 브런치 작가 등록을 통과해오라는 숙제를 내줬을 때 우리 중 유일하게 성공한 급우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직장에서 홍보팀장이다. 대중들의 눈높이를 파악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한다.

   “중복되는 표현을 지우고 글 분량을 많이 줄여야겠어요. 요새 사람들은 긴 글 안 읽어요. 이미지를 넣는다거나 트렌드에 맞는 감각적인 내용이 있어야 읽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일단 브런치에 실리는 글은 더 짧아야 해요.”

    나보다 먼저 낭독한 써머 님의 글은 내 글보다 훨씬 길었지만 로그 님은 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글쓰기 클래스 끝수업이니 마지막 숙제로 브런치 작가 등록에 성공해서 계속 글을 쓰자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이었으므로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아니, 사실은 이렇게 들렸다. ‘이 글로는 안 될걸요.’라고.


   내 글이 어정쩡하기는 했다. 제목부터 ‘독후감 아닌 독후감’이다. 책을 읽고 내가 이렇게 힘들다,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힘들다는 내용을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고 표현만 바꿔가며 징징거렸다고 볼 수 있다.  로그 님이 그걸 딱 꼬집어낸 것 같아 더 아프다.


    로그 님의 눈으로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며 필요 없어 보이는 문장을 지워본다. 시원해야 할 텐데 아까운 기분이 더 많이 든다. 문장과 문장들이 팔짱을 끼고 유기체가 되어버렸다. 어떤 한 문장을 지우면 다른 문장들이 다시 내놓으라고 아우성친다. ‘나는 다음 문장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음 문장을 지워버리면 나도 있을 이유가 없어.’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지우다 보면 글 전체가 사라질 것 같다. 한번 망친 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제 수업 내용을 다시 복기해 본다. 독후감을 쓰다가 턱 막혔으므로 교수에게 그 지점을 물었다.       

  “독후감을 쓰다가 감정적 늪에 빠져버리는 상황은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요. “

  교수가 답했다.

  “그런 작품은 저도 의도적으로 피해요. 예를 들어 세월호랄지….”

   그 단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는지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 괜한 질문으로 교수를 울린 것 같아 얼른 다음 글을 읽자고 주의를 돌렸다. 이어지는 합평 시간에 그가 해준 말 하나를 붙잡았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를 힘 있게 붙들어야 해요.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에 천착해 보세요.”

    이거다 싶다. 내가 감정적인 늪에 빠졌을 때 잡고 올라올 수 있는 끈!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머물러 보는 것.


  그것은 내 글에도 주제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제 내 글은 길이가 문제가 아녔다. 할 말이 분명하다면 길이는 문제가 아니리라. 어제 내 글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음~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유능한 평론가가 애정을 담아 읽은 다음에 내 무의식이라도 분석해서 말해주면 ‘아~ 그게 맞을 겁니다.’라고 금방 수긍해 줄 기세다.  지금 평론가가 웬 말이냐. 글쓰기 클래스 급우마저 길다고, 뭔 소리 하는 줄 모르겠다고 하는 판에.



   나의 쓰기 과정을 돌아본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글을 쓸 때 일단 쓰기부터 한다. 쓰는 행동 자체가 주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뭘 써야겠다는 생각을 미리 하지 않고 쓰다 보면 온갖 수다를 떨며 논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글수다는 꽤 긴 편이다. 주절주절 계속 고시랑댄다. 나 혼자 글을 쓸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독자가 생기니까 독자는 묻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네~ 뭘까요? 음~ 저도 확실히는 잘 모르겠고…..”라고 내가 머뭇거린다면 독자는 주저 없이 글을 덮을 것이다. 괜히 시간낭비했다고 성질을 낼 수도 있다. 로그 님처럼 배려심 넘치게 ‘좀 길어요.’라고 돌려 말하는 사례는 꽤 상냥한 축일테다.

 


     글쓰기 클래스 과정 중에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숙제의 위력이었다.  숙제가 있으니까 강제로라도 글을 끝맺더란 말이지.  읽는 이들을 상상해 보는 일이 쓸 내용을 생성하고 단어를 고르는 일을 돕기도 했고 그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A4 2~3장이나 되는 글을 어떻게든 완성해 냈다.   이것이 숙제의 위력이라기보다는 독자의 위력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제 이 귀한 독자님들에게 더 고도의 예의를 갖춰야겠다. ‘독자님들~ 제가 할 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서 찾아뵙겠습니다.’



from 51세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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