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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범 Nov 18. 2019

산 입에도 거미줄 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거미는 살아있는 사람의 입속에 거미줄을 못 친다. 사람의 입김이 있으면 거미는 집을 짓지 못한다. 2주일에 한 번씩 시골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곳곳에 있는 거미줄 제거작업이다. 사람이 숨을 쉬고 있으면 거미는 집을 짓지 못하고 사람이 떠나면 거미가 집을 짓기 시작한다.


옛 직장 동료 중에 별명이 부채도사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월급날만 되면 책상 서랍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서 펼치는데 가히 부채라 불릴 만 했다. 실제로 그 친구는 그걸 펼쳐서 장난삼아 부채처럼 부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 결제일이 27일로 한정되어 있었고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지도 않았기에 그 친구는 월급날이 되면 만사 제쳐놓고 이 은행 저 은행 돌아다니면서 신용카드 돌려막기부터 해야 했다. 그 많은 신용카드 중의 하나라도 제때 결제를 하지 못하여 터지기라도 하면 그의 한 달 간 생활은 끔찍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그 날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언제까지 그것이 가능할까? 인천 앞바다에 배가 들어오지 않는 한 당연히 한계에 도달하게 되어 있었고, 간절히 부탁을 하기에 천만 원 대출 보증을 서줬다. 그 때는 내가 미쳤었나 보다, 그런 불안한 친구한테 대출 보증을 서주다니. 집으로 재산 압류 통보가 오고 아내는 화들짝 놀라고 나는 그 친구랑 말다툼하고. 별 피해 없이 해결은 되었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빚보증 안 서준다.


그런데 몇 년 후 나도 그 친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매월 일정 금액을 꼬박꼬박 받아서 생활하는 직장인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독립을 한 후에는 달라졌어야 하는데, 이전의 직장인 마인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보니 들쑥날쑥 하는 개인 사업가의 소득을 감을 잡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신용카드 돌려막기, 그것 생각 보다 사람 피를 말린다. 하나만 삐끗 해도 내 삶 전체가 흔들린다.


우연히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신용카드를 막고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신용카드를 하나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당시에는 신용카드를 말소하려면 신용카드와 통장을 들고 은행을 직접 방문했어야 했다. 매우 귀찮은 일이었지만 나는 단 하루 만에 관련 은행을 모두 방문하여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나 스스로에게 보여 주었다.


당시 내 머리 속에서는 도무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을 하고 나니 한 친구가 “봐라,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고 했잖아?” 라고 한다. 뭐라고?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 빚이라는 게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생긴 빚이 아니고 사업 경험이 없어서 생긴 빚이었고, 운이 좋아서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은 거지, 그게 산 입의 거미줄과 무슨 상관이냐?


산 입에도 거미줄 친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실제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친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자율이 20% 정도인데 그것도 신용도가 낮아서 못 빌리는 사람은 이자율이 40% 정도 되는 사채를 빌려야 한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자 20%도 금방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는데 하물며 40%나 하는 사채 이자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장기를 매매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경우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사실 나도 당시에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향냄새를 맡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직장에나 부채도사가 한두 명씩은 꼭 있다. 대부분 술자리가 잦은 남자들이다. 지금 스마트폰 안에 부채를 펼치고 계신 부채도사님들께 유경험자로서 말씀드리나니, 빚은 절대 줄지 않는다. 인천 앞바다에 배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부터 이를 악무는 각고의 노력으로 신용카드를 하나씩 없애나가기 바란다. 금방 되리라 기대하지는 마라. 그대가 부채도사가 된 기간이 일 년이었다면 모든 신용카드를 없애는 데는 그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힘들더라도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언제 당신 입속에 거미가 집을 지으러올지 모른다. 꼭 명심하기 바란다. 산 입에도 거미줄 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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