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얘기를 할 때 제일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흥부와 놀부. 나도 학창시절에 선배나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자주 받았었다. ‘흥부가 나은가, 놀부가 나은가?’ 지금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흥부가 나은가, 놀부가 나은가?”
단언컨대 놀부가 낫다. 흥부가 대책도 없이 애를 많이 만든 것 때문이 아니다. 분명 부모님의 유산은 형 놀부와 동생 흥부가 반반 나눠야 되는 것이었다. 놀부가 형이라서 대접을 좀 해준다고 하더라도 40퍼센트 정도는 흥부가 가지고 왔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형한테 다 뺏기고도 돌려받을 생각도 안하고 형을 존중한답시고 자신은 거지처럼 산다. 흥부의 이런 무책임함으로 인하여 아내와 자식들이 힘들게 사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흥부 자신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을 뒤집을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흥부의 잘못은 형 놀부를 보면 더 명확하다. 왜냐하면 흥부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형 놀부가 미안한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을 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잘못이라고 꾸짖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나 역시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형 놀부는 자신이 부모님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 흥부한테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부인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에도 그런 경우가 흔히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시즌이 되었을 때 내 친구 한 명은 친척 어른의 도움으로 구하기 어려운 입사원서를 한 부 받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다른 친구를 위하여 친척 어른께 한 부 더 구해주실 것을 부탁했다. 그와 그의 친구는 전공이 같아서 중복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의 친구가 합격하고 그가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친척 어른이 원서를 구해주시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친구는 간곡히 부탁하여 원서를 받아서 그의 친구한테 선물했고, 결과는 친척 어른이 우려하신 대로 그의 친구는 합격하고 그는 떨어졌다. 그의 친구는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크게 한 턱 쏘면서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 그의 친구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 그는 여전히 백수였다.
직장에서 뭔가 어려운 일이 생겨서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가급적 맡지 않는 게 상책이다. 순진하게 맡아 했다가 결국 고생만 죽도록 하고 얻는 것 하나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1997년 IMF 경제위기가 오기 몇 개월 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는 차년도 사업계획을 작성하느라 매우 바쁘던 시기였다. 모 부서에는 관리자가 2명 있었는데 A관리자는 차년도 사업계획 완성을 위해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매년 사업계획 수립 시기에는 흔히 있는 일이다) B관리자는 일은 뒷전에 두고 사업부장을 모시고 술자리를 따라다니며 사업부장의 수발을 거들었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 IMF 경제위기로 인원감축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을 때 놀랍게도 B관리자가 남고 A관리자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A관리자는 “내가 사업계획 수립한다고 매일 야근할 때 B관리자는 사업부장 모시고 술자리 따라다녔는데 왜 내가 해고됩니까? 당연히 B관리자가 해고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우리 사업부의 사업계획을 수립한 게 누굽니까?” 읍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도 그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A관리자의 입장을 옹호했지만 결정권자는 사업부장이었고 결국 사업부장의 사랑을 받은 B관리자가 선택된 것이다. A관리자는 우직하게 회사를 위해서 일했고 B관리자는 자신의 살 길을 위해서 인사결정권자의 사랑을 받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A관리자는 일만 잘했지 요령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착하면 손해 보는 게 어디 직장생활 뿐이겠는가? 비양심적으로 끼어들기 잘하면 일찍 간다. 얼굴에 철판 깔고 불법주차 잘 하면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비양심적으로 얼굴에 철판 깔고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너무 순진하고 착하게 살지는 말라는 말이다. 순진하고 착하게 살면 손해 볼 수도 있다. 경쟁은 거래처하고만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요령껏 삶에 있어서 투잡도 같이 끼워넣기를 권한다. 회사에서 배운 것 퇴근 후에 자기 개인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 가끔은 회사의 조직력을 개인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 종합상사는 해외지사에서 본사로 귀임한 직원의 계속 근무 비율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지사에 그냥 눌러 앉거나, 본사로 귀임하여 1년 이내에 그만두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착한 사람만 회사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남아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지 절반 이상이 회사에서 배운 것을 들고 나와서 개인을 위해서 쓴다. 해외지사 근무기간 동안 갈고 닦은 거래처와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그만둔 사람들이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