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사하면서 대학원 경력을 인정받았다. 사규에 의하면 입사 3년차가 되면 대리 진급시험을 볼 자격이 생기는데, 대학원 경력을 인정받은 나와 또 다른 동기 한 명은 입사 1년차에 대리 진급시험 응시 자격이 생겼다. 다른 동기들은 먼저 대리되면 좋겠다고 부러워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부담이 되었다. 2년 선배와 같이 대리가 된다는 것, 그리고 1년 선배 보다 먼저 대리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직은 조직원 상호간의 조화가 우선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1년 선배 보다 먼저 대리 진급 한다는 것, 2년 선배와 동격이 된다는 것이 어쩌면 조직 문화를 저해하는 결과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시험을 망치기로 약속했다. 시험을 안치면 표시가 날테니 시험을 치기는 치되 엉망으로 답안을 작성하여 거의 0점 수준이 되면 과목 점수 미달로 진급에서 누락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는 둘 다 과목 점수 미달로 대리 진급에 실패했다. 같이 시험을 쳤던 2년 선배도 몇 명 진급에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 되었으면 2년 선배까지 직장 내 부하직원으로 두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뻔 했다”고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가 얘기하지 않아도 “대학원 출신이 과목시험에서 점수 미달로 대리진급에서 떨어진 것은 고의성이 보인다”면서 수군거리는 뒷담화가 들렸고, 우리는 마치 조직의 문화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 영웅이라도 된 듯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직장생활하면서 저질렀던 제일 멍청했던 일 중의 하나였다.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나는 바보였다. 나는 잠시 멋있게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잠시, 내 남은 인생 모두는 그로 인하여 1년씩 늦어진 것이다. 그로 인하여 과장도 1년 늦게, 차장도 1년 늦게, 남은 모든 직책도 1년 늦게 진급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내가 대리 진급을 고의로 안했다고 해서 선배들이 고마워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먼저 챙겼어야 했다.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먼저 챙겨야 한다. 이기적이라는 말 듣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직장인에게는 그것이 좋은 말이고 칭찬이다.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으면 ‘배신을 당했다’ ‘뒤통수를 맞았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회사가 수많은 직원들 중에서 왜 하필 당신만 배신했을까? 왜 당신의 뒤통수만 때렸을까? 회사는 당신을 배신한 것도 아니고 뒤통수를 때린 것도 아니다. 그저 당신이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다. 입사할 때는 당신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당신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과장급이 되었으면서 실력은 입사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직위가 올라가면 직원은 맡은 바 임무가 무거워지고 그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실력이 필요한데 어쩌면 당신의 실력은 직위 상승과 같이 상승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녀가 사귀다가 어느 한 쪽이 헤어지자고 통보하는 것과 같다. 어느 한 쪽이 헤어지자고 통보하는 것을 다른 이성이 생겼기 때문이라면서 ‘변심’이라느니 ‘뒤통수’라느니 욕을 해대지만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본인의 매력이 없어진 것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신을 당했다’ ‘뒤통수를 맞았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해고 통보가 오면 “그래, 여기 말고 내가 갈 곳이 없냐?”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구차한 패자의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있는 사람한테는 해고 통보도 안 온다. 이성 친구가 헤어지자고 통보가 오면 “그래, 이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잔데 내가 왜 너 한 사람한테 미련을 가지냐?”라고 하면서 쿨하게 대답하면 그 이성친구가 다시 돌아온다. 그때 다시 받아주든가 완전히 헤어지든가는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말 하는 직장인은 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야근하면서 회사를 위해 봉사해왔는데 그 보답이 고작 이겁니까?”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학교 다니는 애들 학비는 어떡하고 집안 살림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아직 몰랐던가? 회사는 당신의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회사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능력이 필요할 뿐이다. 회사는 철저한 영리추구집단이다. 영리추구에 도움이 안 되는 건 뭐든지 잘라낸다. 따라서 이기적으로 생각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바둑의 기리(棋理)에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있다. 나의 삶을 먼저 도모한 후에 상대방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어디 바둑뿐인가? 모든 인생의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먼저다. 내가 먼저 살고 나서 남을 생각하는 것이다. 회사는 회사를 먼저 생각하고 난 후에 당신을 생각했기에 당신이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자르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도 당신을 먼저 생각한 후에 회사를 생각하면 된다.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회사를 자를 수도 있어야 한다. ‘회사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같은 패자나 쓰는 말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