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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12. 2024

수험생 사회-승희의 교제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언니는 뭔가 나에게 더 할말이 있는 듯 했지만 일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식당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때 마침 승희도 독서실에서 나왔다.


“인사드려. 출첵스터디로 알게된 희정언니야.”

“안녕하세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반가워요. 오늘 식당에 우리 말고 같이 출첵스터디하는 남자분들 좀 더 올거에요. 넘 낯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친구들 더 만든다 생각해요.”

“네. 감사합니다.”


식당에 원경, 연수 오빠가 앉아있었다. 예림씨가 보이지 않아 희정언니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예림 씨는?”

“바쁘다고 못 온대.”

“그래도 저녁만 먹는 건데.”

“아침에 선물 주면서 얘기하드라고. 그럴 수도 있지.” 

‘바쁜것도 맞겠지만 아마 승희까지 온다고 하니 불필요한 인맥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승희도 승희지만 예림씨 그 친구도 참 깍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정언니가 예약한 식당은 고급 중국집 같은 곳이었다. 깨끗한 사기 그릇에 면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나왔다. 수험생들끼리 만난 모임이라 식사하면서 시험에 관한 얘기만 하였다.

내가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말을 시작했다.


“다음 달 시험인데, 준비는 잘하고 있어요?”


희정언니, 원경, 연수오빠 모두 시험 얘기에 한숨을 푹 쉬었다

.

“저번에 모의고사 봤는데 뭔 시험이 아니라 완전 아이큐테스트같아.”

“그르게요. 과목 자체는 재미있는데.. 시험이 너무 유형이 외계인같아서..”

“수현인 시험 끝나고 뭐하고 싶어?”

“시험 잘 봐야 다른 걸 할 맛이 나겠지만.. 일단 살부터 빼려구요. 너무 살쪘어요.”

“응? 아닌데? 수현이 딱 보기 좋은데.”

“에이, 원경오빠가 너무 좋게 말해주네. 나 완전 지금 돼지잖아요.”

“그래, 여자들은 약대 들어가면 그때부터 얼굴 몸매관리 잘 해가지고 시집갈 준비 하는거지.”

“그르게, 좋겠어. 여자들은 시험만 붙으면 남자들이 그냥 데려갈걸.”

“에이, 이 시험 붙으면 여자만 인생역전 하는건가, 남자들도 전문직하면 여자들 줄서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세 분은 이번에 잘 되실거같아요. 다들 sky출신 아니세요?”


대화가 다소 사회적인 노골성이 드러나자 승희도 끼어들었다. 내가 평소에 출첵스터디원들 학벌이 좋다고 얘기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래도 이 시험 쉬운 시험 아닌거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다들 잘 될건데, 학벌 신경쓰지 말아요."


희정언니가 고급스럽게 답변해주었다.


“가끔 독서실에서 세 분 스터디하는거 보았는데 다들 포스가 느껴지더라구요. sky포스.”


자꾸 sky란 단어가 노골적으로 들려서 빨리 자리를 파하고 싶었다.


“음식이 되게 맛있어요. 희정언니. 잘 먹었어요.”

“누나 잘먹었어요. 난 강의가 있어서 이만.”


연수오빠는 얼른 가방을 챙겨 짧게 인사하고 나갔다.


“언니, 우리도 따로 나가자. 스터디 할거 있잖아.”


승연이와 원경 오빠 둘만 따로 남기고 싶어서 일부러 희정언니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 맞다. 난 수현이와 따로 갈게. 원경아 승희씨좀 챙겨줘.”

“네?.. 아 네...”


원경오빤 갑작스러게 만들어진 상황이 당혹스러운 듯 했으나 이내 수긍하였다.

희정언니와 나는 얼른 자리를 비워주고 카페에 들어갔다.


“언니. 오늘 고마웠어. 여기 커피. 중국집 되게 맛있드라.”

“아니야. 둘이 잘되겠지. 원경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응? 스타일이 아니라니?”

“아.. 아까 잠깐 원경이가 얘기하더라구. 승희씨는 좀 생각해보고 싶다고.”

‘뭐지.. 되게 외로워했으면서. 하기사 막상 둘이 연애해서 꽁냥거리는거 내 앞에서 그러는 것도 배아플거 같기도 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희정언니와 독서실로 들어갔다.

1시간 후 승희가 행복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아니 .. 원경씨 이사람 대체 왜이래? 나보고 몇시에 오냐 하니까 늦게 온다고 했거든. 근데 자기가 깨워줄테니까 앞으로 일찍 오라구..”


말하다 중간중간 꺄르르 웃었다. 외로운 수험생활 와중 자신에게 관심보여주는 사람이 있어 즐거운 모양이다. 둘이 오늘 첫 인상은 괜찮아보여 다행이지만 원경오빠같이 스펙좋은 분이 승희한테 바로 이렇게 직진할 줄은 나도 꿈에도 몰랐다.

둘은 생각보다 눈이 빨리 맞아 연애를 시작했다. 시간나면 종종 만나는 듯 했다. 점심먹은 후에도 짬을 내서 간식먹는 듯 했고 산책도 하며 얘기를 나누곤 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던 나도 둘이 생각보다 케미가 좋자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부를 위해 떨궈놓고 싶었던 친구지만 막상 내 앞에서 연애질하고 있는 모습이 꼴사나웠고 원경오빠가 너무 아까워지고 있었다.


‘하 그냥.. 원래 나한테도 관심이 있던 사람인데.. 막상 저렇게 잘 되니 너무 아깝네.. 이미 후회하면 뭘해. 저렇게 둘이 잘 맞는 거 같은데.. 난 이참에 그냥 공부에나 집중하자.’


난 그 이후 무리하다시피 새벽에 나와 밖에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2달남은 수험기간 마치 벼락치기나 다름없는 공부강도였다. 


‘시간을 정하자.. 아침엔 화학이랑 유기화학, 오후는 물리.. 물리공부가 약하니까 나는 시간을 좀 많이 투자해야지.., 그리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생물..’


공부가 어려웠지만 한번 공부했던 내용을 계속 복습하니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욕심만큼 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식사시간도 아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식사시간이 정말 힘들었던 건 승희와의 대화였다.

승희는 식사시간 내내 원경오빠에 대한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연애 초반으로 한창 좋을 때라는건 알겠는데 그래도 소개해준 사람에게 말을 아끼는 배려가 전혀 없었다.

식사하는 도중 원경오빠와 톡하는 내용을 종종 보여주곤 했다.


“내가 매일 밤 나에 대한 마음을 톡으로 보내달라고 오빠한테 그랬거든. 이것 봐라?”


톡에는 원경오빠의 승희를 향한 구구절절한 마음이 담긴 장문의 글이 있었다.


‘승희에게.. 이렇게 톡을 보내야 내 마음을 알수있다니..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

한글자 한글자 너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가벼운 아이라고 오해할까봐 조마조마하고

날 항상 긴장시키면서도 수험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준 너에게 항상 고맙고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 잘해주지도 못해 너에게 항상 미안하고

우리 마음이 오래도록 영원하길 늘 기원하고 있어.

내일도 너의 얼굴을 볼 생각에 설레며 이만 줄일게. 원경이가.’

“헐...”


대체 언제봤다고 이렇게까지 글을... 매일 이렇게 써야하는 원경오빠도 좀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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