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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15. 2024

수험생 사회-원경오빠의 합격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승희와의 통화를 끝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승희를 위로해주는 척했지만, 원경오빠도 이제 전문대학원 들어가고 나면 어쩔수 없이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고시붙은 것만큼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데 당장 소개팅 상대로 거론되는 여자는 승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높은 스펙의 여성일 것이다. 승희가 약사가 된다면 서로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해볼 관계가 될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둘은 결혼까진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다.

둘의 관계를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해야하는 것은 공부라는 생각이 더 명확해졌다.


‘요즘은 남자만큼 여자도 스펙이 좋아야 결혼을 잘 할 수 있어,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엔 꼭 약대를 들어가고 말거야.’


승희와 원경오빠와는 주중에 강의를 끝내고 저녁에 보기로 하였다. 우리 대학교 근처의 유명한 파스타 집에서 보기로 하였다. 승희가 먼저 자리잡고 기다리고있었는지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 손을 들어 흔들었다.


“여기야.”

“잘 지냈어?”

“뭐 그냥, 근데 너 요새 안보이드라?”

“난 이번에 졸업반이라, 최소학점만 들었어. 너랑 안겹치는거같드라.”

“그랬군. 좋겠네. 난 아직 좀 남았는데.”

“좋기는, 여기 졸업하면 백수되는데. 통화한 날 우는 거 같았는데, 기분은 좀 괜찮아졌어?”

“응, 너랑 끊고 오빠랑 전화했는데, 내가 우니까 바로 달려오는 거 있지.”

“아... 합격해서 같이 좋아할줄 알았는데.. 우니까 당황하셨나?”

“그냥 나 걱정되기도 하고 나를 너무 좋아해서 온거지 뭐. 우린 왠지 결과랑 상관없이 결혼할 수도 있을 거 같지 않니?”

승희의 말도 안되는 추측에 난 어이가 없었다.

“아니.. 너도 일단 자리를 잡고 그래야지, 결혼은 좀...”

“난 솔직히, 사랑만으로 결혼의 조건은 충분하다 생각해. 오빠도 날 많이 사랑하는 거 같고, 자리잡는거야 뭐 둘 중 하나만 자리잡으면 되는 거잖아.”

“둘 다 준비가 되어야지, 너는 너고 원경오빤 원경오빠고”

“너도 사랑을 해보면 알거야,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걸. 어? 오빠!! 여기여기.”

마침 도착한 듯 원경오빠가 승희의 손짓에 미소로 화답하며 들어왔다. 승희는 뭔가 원경오빠와의 밝은 미래에 확신이 있어 보이는 듯 했다. 터무니없는 승희 혼자만의 희망이라 생각했지만 내심 원경오빠는 어떤 생각으로 승희와 만남을 유지하는지 내심 궁금했다.

합격하고 본 원경오빠는 한층 가볍고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나는 언제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보면서 씁쓸한 웃음밖엔 나오지 않았다.


“합격 축하해요 오빠.”

“고마워. 수현이 넌 어떻게 됐어?”

“아 저는.. 이번에 잘 안될거같아서 다시 준비하려구요.”

“너가 진짜 공부 열심히 했었던거같은데.. 올해 들어가기는 힘든거야?”

“열심히만 한다고 들어가지나요;; 점수가 잘나와야 들어가지는거지.”

“그래..고생했고 다음엔 꼭 붙길 바래. 이건 내가 살테니 둘이 먹고싶은거 마음껏 먹어.”


나와 승희는 메뉴판 보고 파스타 2개, 피자 1개를 고른 후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 기다리면서 찬찬히 원경오빠를 훑어보았다. 합격한 예비 의사라고 생각하니 얼굴에서 광채가 조금씩 나는 듯 했다. 무턱대고 승희 소개해준게 아깝게만 느껴졌다. 승희 입장에선 남편감으로 잡고 싶어하는 마음이 너무도 당연했다. 승희는 계속해서 너는 내 남자임을 티내고싶었는지 원경오빠한테 엥기며 갖은 아양을 떨었다.


“오빠, 이번 주 주말 뭐한다 그랬었지?”

“조부 제사 지내러 가. 그래서 이번주말에 만나기는 좀 힘들거같아.”

“그럼 일손 많이 필요하지 않아? 나도 가서 좀 도와드릴까?”

“피곤할텐데 집에 있어. 공부할 것도 많은데.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피.. 겸사겸사 오빠 가족분들 뵙고싶었는데.”

“차차 인사하면 돼지. 우선 너의 공부가 제일 중요하니깐.”

“싫어,, 공부안하고 주말에 오빠 보고싶어..”


철없이 엥기는 승희를 원경오빠는 가만히 토닥토닥해줬다. 아무리 봐도 원경오빠는 승희가 자리잡기 전까지는 결혼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럼그렇지. 역시 승희만의 착각이었구나..’


남자든 여자든 본인만의 커리어를 어느정도 만들어놓고 결혼을 하는게 일반적인 순서인 것 같았다. 지금 상황으론 커리어가 언제 형성될지 모르는 승희가 원경오빠한테 목을 매는게 당연한 그림이었다.

승희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본인의 처지가 인지돼서 현타가 왔는지 연거푸 술을 들이마셨다.


“얘가 왜이리 술을 많이 마신데.. 오빠가 승희 좀 바래다줘야겠어요.”

“응, 일단 택시를 부르자.”

“우... 오빠... 주말에 나도 데려가...”


원경오빠는 승희를 겨우 부축하여 택시에 태웠다. 


“수현아 고맙다. 택시 불러줘서. 승희 바래다주고 들어갈게.”

“네 오빠 조심히 들어가요.”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는 원경오빠와 승희를 태우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렇게 자상하고 스펙좋은 남자를 딴 여자한테 소개해주고. 넌 연애능력도 없으니 공부로 꼭 성공해야겠다 이수현.’


다음번에 저런 남자가 내 근처에 있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삼수를 꼭 성공하자. 그럼 저런 남자를 또 만날 수 있겠지.

삼수를 시작하게 되자 오롯이 나혼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고시원을 들어가겠단 생각을 얘기했다.


“고시원을 들어가겠다고?"


부모님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여기 있으면 엄마가 밥도 다 차려주지, 방 청소도 해주지, 옷 빨래도 해주지. 넌 그냥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대체 나가서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거야?”

“다 해주면 뭘해. 맘을 편하게 안해주는데, 나 밥먹는거 보면서 한숨 푹푹 쉬고 돌아오면 인사도 안받고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얘가 지금 지원받아가며 하고싶은 공부하고있으니 배가 불렀지. 그럼, 돈도 안벌고 나이 들어서 공부하고 있는 얘 어화둥둥하면서 공부시켜야 하니 우리가? 우리 등골 휘는 소리는 안들려?”

“딴 부모님들은 자식이 공부한다하면 이래저래 지원 다해주는데 우리 집이 못사는 집도 아니고, 엄마가 그랬잖아. 지원해줄 수 있는 만큼 지원해주겠다고!”

“학원공부 지원해준다고 했지 나가서 살면 생활비는 또 얼마나 드는데!”

“내가 뭐 평생 이 공부해? 죽이되든 밥이 되든 내년 안으로 이 공부 끝내겠다고!”


기가 막혀하는 엄마를 뒤로 하고 고시원 들어갈거라 아침부터 악다구니를 쓰고 집을 나왔다. 학원가는 마을버스엔 깔끔하게 빼입고 피곤이 덜 풀린 얼굴로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버스 안으로 올라서는데 꾀죄죄한 내 추리닝에 묻은 김치국물이 보여 얼른 손으로 가렸다.


‘나도 저렇게 하루하루 쳇바퀴처럼 똑같이 굴러가는 삶을 살고 싶다..’


저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퇴근 시간이 끝나면 야근을 하는 직장인도 있겠지만 보통 운동하러 다니겠지.. 남자는 헬스, 여자는 요가.. 취미로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겠고..


“이번 정류장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내가 다니는 학원가는 수험생도 많지만 직장인도 많이 내리는 강남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 새 버스는 도착해있었다. 


‘그래. 잡생각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들어가서 학원수업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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