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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16. 2024

수험생 사회-다시 만난 사람들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들어가서 수업에 전념하리라 강의실로 들어간 내 다짐은 강사실에서 나온 낯익은 얼굴을 보고는 금방 싸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그 낯익은 얼굴은 합격 후 강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온 김예림이었다.


“......”


오늘 수업쨀까, 신은 왜이리도 나에게 가혹할까. 

수업은 째고 싶지만 나에게 갈 곳은 없었다. 집과 독서실, 학원 말고 나에게 허락된 장소는 전부 돈을 쓰게 만드는 장소이다. 


“어? 수현언니 아니에요?”


황급히 뒤돌아 강의실로 들어가려는 나를 예림이가 얼른 눈치채고 불렀다.

‘젠장..’


아무일도 아닌척 태연하게 예림에게 인사했다.


“어머, 이게 누구.. 예림이구나.”

“네 언니는 다시 공부 시작하신 거에요?”

“뭐.. 그렇게 됐어.”

“이 시험 거의 잘 안되는 시험이잖아요. 다시 하시면 꼭 붙으실거에요.”

“넌 잘 된거 같네? 어디 학교 붙었어?”

“저 지방쪽 의학전문대학원 붙었어요. 서울권은 들어갈 점수는 못돼서”

“그렇구나. 잘됐네.”

“아.. 그리구..언니한테 물어볼거 있었는데.”

“....?”


예림은 뭔가 한참 말하기 머뭇거려 하는 표정이었다.


“저 원경오빠랑 같은 대학다니는 선배랑 사귀고있어서 들은 게 있는데요. 소문으론, 원경오빠가 여기저기 소개팅을 다니고있다고..”

“응???? 지금 사귀는 사람 있는데?”

“그니까요. 언니 친구랑 사귀고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근데.. 제가 이 말한건 좀 비밀로 해주세요. 이제 같은 계열에서 일할 사인데 원경오빠랑 저랑 또 언제 볼지 모르구 해서..”

“......”


승희가 약사가 되지 않는 이상 원경오빠가 승희를 얼마나 오래 데리고 있진 않을거란 생각을 했다. 근데 벌써부터 딴 곳에 눈을 돌리다니.. 승희 입장에선 배신감에 화가 치밀수도 있겠다.


“뭐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 내가 얘기하면 안되겠네. 남 연애사업은 남이 알아서 하겠지.”

“근데 원경오빠 좀 웃기지 않아요? 언니 친구랑 헤어지고 만나야지.”

“합격했는데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 내가 남이 어떻다 말할 입장은 아닌거같아.”

“뭐 이제 의사니까 같은 전문직 만나겠지만..”


예림인 아차 싶었는지 자기가 말해놓고 놀라며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내 앞에서 스터디 자격으로 명문대 운운하던 얘였는데, 그런 언행이 놀랍지도 않아 피식 웃었다.

“그만 가봐도 돼지? 수업 있어서. 들어가라.”

“아..네.. 저 들어가세..”


예림의 벙찐 표정을 뒤로 하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속에서 산다. 수업 시작하기 몇분 전인데도 수강생들은 10대 학생들처럼 무슨 할얘기가 많은지 남 얘기를 신나게 쫑알쫑알거린다.


“의사랑 결혼한 내 친구, 엄청 매달려서 남편 잡은 거드라구. 싸우면 남자 집까지 가서 밤새 울고불고 매달리고.”

“여자가 그렇게까지 매달릴만큼 의사랑 결혼하는게 메리트가 있는건가?”

“지금 장난 아니야. 자녀 교육비로 월 800만원을 쓰게 한다던데?”


상대방이 매달릴만큼 전문직이 가치있는 직업인지 회의감이 느껴지지만, 그 전문직 직업 가져보겠다고 3년째 20대의 청춘을 바치고 있는 내 인생을 보면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수업이 끝난 후 대충 하루 공부 시간표를 짜보았다.


월요일~금요일: 언어 10문제 타이머 재고 풀기(10시 끝)

화학, 유기, 물리 1회차 강의 복습 후 해당 범위만큼 기출, 문제풀이(3시 끝)

생물 1회차 강의 녹음기 들으며 다시 속독(11시 끝) 

토,일요일: 타이머 재고 모의고사 후 생물 공부


당분간 이렇게 계획을 잡고 공부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이대로만 진행되면 특별한 차질 없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만 같았다.


‘문제는 역시 또 외로움이야... 시험날까지 계속 혼자서 밥을 먹긴 힘들어.. 누가 좀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핸드폰 연락처 명단을 여니 지금 거의 연락을 안하고 있는 사람들 뿐이었다.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니 사람들을 만날수가 있나.. 맞다. 희정언니는 지금 뭐하고 계시려나.’


희정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작년 스터디 모임에서 유일하게 재수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올해도 같은 지역에서 공부하실지 궁금했다.


“여보세요.”

“언니, 저 수현이에요. 잘 지내고 계셨어요?”

“응 수현아, 언닌 잘 지내고 있지.”

“언니 혹시 어디서 공부하시는지? 같은 지역에서 공부하면 같이 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오 정말? 난 그때 공부했던 곳 뒤편에서 공부해. 수현이도 같이 공부하면 나도 외롭지 않고 좋지.”

“우와 너무 잘됐다. 감사해요 언니!!”

“내가 고맙지. 연락줘서 고마워.”


생각보다 빨리 밥터디가 구해지다니 이번엔 정말 합격할 운인가 생각이 들어 기쁘기 그지 없었다. 희정언니는 내가 다니는 학원의 뒤편 독서실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해오고 있었다. 

희정언니는 고맙게도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연락줘서 고마워 수현아, 나도 안그래도 너무 적적해서 출첵 스터디라도 할까 했었거든.”

“오 그래요. 다른 스터디는 서로 너무 시간뺐는거 같고 그거라도 같이 해요.”

“그래, 그럼 이번엔 내가 한번 독서실 게시판에 올려볼게.”


희정언니는 포스트잍에 출첵스터디 모집 글을 적어 바로 게시판에 붙였다. 솔직히 희정언니랑 둘이서만 같이 공부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거같은데. 


‘그래도 아침에 강제 기상 동기가 필요할테니..’


어차피 출첵스터디는 아침에 잠깐 보고 마는 스터디니 스터디원끼리 큰 충돌이 있을까 싶었다. 

출첵스터디 모집글 게시 후 얼마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희정언니에게 신청문자를 보냈다.


 “수현, 한 명 연락왔어, 셋이 같이 출첵스터디 하면 되겠다. 이따 밤 8시쯤 요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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