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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20. 2024

수험생 사회-다시 혼자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죄송합니다. 소란이 일어나서..”

“두 사람 잘못 아닌건 아는데.. 이런 분란이 일어나면 나도 무슨 조치를 취하는 수밖엔 없어요. 일단 저 두 사람은 내 독서실에서 나갔으면 좋겠는데...”

“다신 이런일 일어나지 않도록 할게요.. 오늘은 어쩌다..”

“나가겠습니다. 소란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연수오빠가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손을 모아서 사과를 했다. 사장은 연수오빠를 보고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오늘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거 빼서 환불해줄게요. 취소하고 재결재할테니 카드 주세요.”


사장이 연수오빠 카드를 갖고는 사무실로 들어가자 희정언니는 전 남자친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나가자. 그냥 나가서 얘기해.”


남성은 연수오빠를 씁쓸하게 보다 민망한 듯 희정언니 팔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휴게실에는 나와 연수오빠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야? 저 분 희정언니 전 남친 맞지?”

“응....”

“오빠 왜 저 분과 싸운거야?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 누나는 빨리 그 사람한테 집으로 들어가라 하고 그 사람은 자기랑 다시 만나주기 전까진 한발자국도 여기서 못나간다 그러고.. 자꾸 억지를 부리니까 누나가 결국 울더라구. 그래서 나도 듣다가 못참겠어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둘이 본인이 해결할 문제를 오빠가 끼어들어서 좋게 얘기해도 오지랖이란 소리들을 판에 이렇게 난리까지 피우고. 이제 어디서 공부할 거야? 사장님도 더 이상 여기서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데?”

“누나랑 스터디를 내가 더 할수 있겠어? 좀 생각해보다 카톡할게. 짐싸야겠다.”


연수오빠는 나가서 사장님한테 카드를 받고는 독서실로 들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휴우...”


나도 어찌할 도리 없이 나가는 연수오빠를 배웅해주고 독서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날 밤 두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시험까지 그냥 각자 공부하는게 좋을거같아. 수현이도 시험잘보고, - 연수오빠’

‘수현아, 미안한데.. 아무래도 나 혼자 시간 가지면서 공부하는게 좋을거 같아. 끝까지 함께 못해서 미안해. 시험 잘봐 – 희정언니’


인간관계에 현타가 온 나는 이번일을 계기로 엄마와 싸워서 결국 학원 근처 고시원으로 터전을 잡았다. 핸드폰은 놓고 다니고 대신 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시계를 차고 다녔다.


‘다 필요없어. 이제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다.’


달력으로 시험날까지 체크했다. 딱 3개월 남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원없이 올인해보자.’


3일에 이틀은 새벽 3~4시까지 공부하고 하루는 푹자고 오후부터 공부 시작했다. 독서실 시간이 지나면 24시간 커피점에서 에스프레소 한잔 시키고 또 공부에 집중했다. 

새벽에 커피점에서 공부하며 있어보니 밤일하는 사람들이 커피점에 들러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들은 매우 예쁘고 잘생기고 세련된 옷차림이었다.


“이번에 새로 산 백이야. 이번달 돈들어온 걸로 샀어.”

“신상아냐? 대박부럽, 난 이번에 코성형하느라 못샀는데.”


대화를 더 들어주기 힘들어 책을 들고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비가 막 그친듯한 날씨에 여기저기 얇게 물웅덩이들이 생겼다. 슬리퍼 신고 언제 세탁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추리닝 차림의 추레한 내 모습이 물웅덩이에 비치자 괜스레 서러웠다.


‘휴 진짜.. 전문직 돼서 돈만 많이 벌면.. 명품백도 사고.. 성형도 해서 이뻐지고..’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내가 더 가치있는 일인줄 알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때론 쉽게 살고싶은 생각도 든다. 

흘러가듯이 공부하자라고 생각하긴 주위 물살이 너무 세서 삶이 휘청거리고 기댈 곳이 없어 외로웠다. 

고시원에 들어와서 널부러진 과자 부스러기들을 대충 치웠다.

이렇게 나의 3년차 막바지 수험생은 고시원에서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한 주 너무 달렸으니 일요일은 고시원 청소좀 하고 찜질방가서 목욕하고 좀 쉬고 오자.’

그렇게 생각하고 일요일이 되어도 막상 책을 놓기가 쉽지 않아 대충 빗자루로 이불 한번 털고 책가방을 메고 독서실을 나왔다. 시험날은 다가오고 생각보다 과목을 한번 훑는 속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안하다 보니 고독을 자꾸 식욕으로 채우려고 했다. 폭식하다 체해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몇 번 있었다.

이렇게 한달 지나다 보니 진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안될것만 같았다.


‘곧 있으면 모의고사반 개강하지.. 모의고사 스터디라도 들어가서 입좀 터야겠다.’


시험 두 달 남으면 학원마다 실전모의고사 강좌를 연다. 직접 오프라인으로 듣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터디룸을 따로 잡고 사람들과 모여 인터넷강의로 모의고사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월금, 강의듣기로 한 모의고사 스터디원들은 딱 모의고사 풀고 강의듣고 헤어졌다. 시험이 두 달 남아선지 다들 긴 잡담은 하지 않으려했다. 거기서 몇마디 나누고 헤어지면 입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거같아 살것같은 한숨을 지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뭔가에 열중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외로웠지만 공부하고 고생하면서 뭔지 모를 희열감이 느껴졌다. 공부하는 생활에 재미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치만 이런 생활은 오래가면 안될것만 같았다.


‘최선을 다해보고 이번 시험 안되면 그냥 약사 진로는 포기하자.’

근데 이거 말고 내가 할수있는게 뭐가 있을까.. 그것도 참 막막한 문제였다. 


“콜록콜록”


시험은 8월, 독서실이 어째 7월부터 에어콘을 세게 틀어서 기침이 자꾸 나왔다.

폭식을 오래해서 위는 약해지고 기침도 심해져서 기관지염도 생기고.. 수험생활은 정말이지 열정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기간이다.

시험 한달 전부터는 소화가 안되 죽으로 일주일 버텼다. 기침은 중간중간 병원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지만 좀처럼 멈춰지지 않고 계속 나왔다.

이런 몸으로 시험을 칠수 있을까 싶었지만 예상보다 술술 풀리는 화학 문제들을 보며 약대를 갈 수 있을거라 자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치열하게 두 달 더 버텨가며 생물 2회독, 화학 기출과 문풀 8회독, 유기화학 기출과 문풀 6회독, 물리 2회독을 마쳤다. 

여전히 생물과 물리 공부가 덜된 느낌이었으나 화학, 유기화학 문제가 술술 풀려 이 두 과목을 믿고 이번 시험은 들어가볼 생각이었다.

시험 전날, 밤공기 마시며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콜록콜록”


여전히 기침기운이 남아있는 내 기관지가 정말 원망스러웠으나 어김없이 대망의 시험날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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