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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07. 2024

수험생 사회-새로운 인연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이렇게 하여 나의 우여곡절 수험생 1년 생활이 끝났었다.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수험생은 내 공부도 공부지만 외로움속에 누군가를 만나면 그만큼 리스크가 따르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차라리 연애를 해야 하나.. 어휴.. 그냥 사람들이랑도 이렇게 못지내는데.. 진짜 누굴 만나긴 싫고 징글맞게 외롭고.. 수험생활이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네.’


처참한 성적으로 심장은 고장난 채로 수험생활을 맞이하고 재빠르게 복학했다. 1년만에 복학하고 보니 다들 어느새 졸업반이 되어있었고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도 수험생으로 암울하게 독서실에만 있다 산뜻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여대생들을 보며 힐링하고 있는 사이, 동기 A가 나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수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후... 휴학하는 동안 좀 우여곡절이 있었어. 시험 결과는 나쁘고, A 너는? 잘 지냈어?”

“나도 깝깝하지.. 뭐 할지도 막막해. ”

“대부분 대학원 생각하고 있드라. B도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원 간다던데.”

“우리 전공상 학사만으로는 딱히 취업이 어려우니까. 넌 어떻게? 피트 공부 또 해볼거야?”

“응. 공부도 제대로 못해보고 시험친거같아서 너무 아쉬워. 나중에 포기할 땐 포기하더라도, 제대로 공부좀 해보고 시험쳐보고 싶어.”

“나 봄에 개강파티 가서 알게된 얘도 피트 준비한다드라. 재수해서 우리보다 1년 늦게 들어온 후밴데 동갑. 이따 점심 같이 먹을거같은데. 너도 같이 먹을래?”


순간 귀가 쫑긋하였다. 건너서 알게 된 아이와 같이 공부하게 된다면, 좀더 정상적인 성격이 아닐까 싶었다.


“모르는 사인데 나도 껴도 되려나? 한번 물어봐줄 수 있어.”

“응 잠깐만 기다려.”


부디 괜찮은 아이길... 피트 공부하면서 인간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혼자 공부하기엔 너무 외롭다. 어떤 아이일지 모르지만 부디 괜찮은 성격이기를.. 오전 전공공부가 눈에 들어오질 않고 머릿속으로 그 아이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해갔다.


A의 소개로 만난 아이의 이름은 최승희였다. 얼굴이 단아하고 조용조용할 것 같은 이미지라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소개할게. 이쪽은 승희, 그리고 이쪽은 수현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피트 시험 보셨다고 들었어요”

“네, 비록 말아먹었지만 흐흐. 승희씬 시험 잘 보셨어여?”

“저도 잘은 못봤는데.. 일단 면접준비는 해보려구요. 이번에 잘 안돼도 다시 힘내서 좋은 결과 내면 되죠.”

“둘 다 어려운 시험 치르느라 고생했어. 일단 주문부터 하자.”


곧이어 맛있는 파스타가 나왔고, 나와 승희는 같은 시험을 치룬 공통점이 있는지라 금방 말을 트며 친해졌다. 수험준비할 땐 계속 김밥천국 김밥만 혼자 먹었는데, 복학하니 사람들과 이렇게 만나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험생활 때 마음고생했던 부분이 미약하게나마 보상되는 기분이었다. 


“둘이 더 할얘기 많아보이는데 카페라도 가. 난 과외알바 있어서.”

“응 오늘 고마웠어. 모레 수업때 보자.”


A와 헤어지고 나와 승희는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로 가서 대화를 좀 더 이어나갔다.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해. 나도 휴학을 오래해서 너랑 비슷하게 졸업할거같아”

“그럴까? 피트공부하느라 휴학했구나.”

“응. 근데 휴학했다고 막 공부에 집중하고 그러질 못했어.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 힘들었었거든.” 

“인간관계? 그래 수험기간에 사람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 무슨 일있었는데?”


승희의 질문에 나는 작년에 소정언니와 있었던 일을 고자질하듯 낱낱이 얘기했다.


“커피 같이 마시러 같이 안가준다 삐져, 같이 문방구 같은데 자기가 찾고있는거 같이 안찾아준다 삐져, 아주 삐순이였어.”

“어머.. 완전 피해야할 대상 1순위랑 같이 공부했었구나. 정상이 아니다 완전.”

“내가 운이 없었지. 사람 잘만나야 했었는데.. 넌 이번 피트 공부 어떻게 했어?”

“나도 피트는 치렀는데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좀 마음이 힘들었었어.”

‘와.. 학기 다니면서 연애까지 했는데 나보다 피트도 잘치고... ’


순간 승희란 친구에게 열등감이 확 들었으나, 그 마음은 동경하는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그랬구나.. 남자친구는 어떻게 만났어?”

“친구가 소개팅해줘서 만났어. 공부하면서 덕분에 외롭진 않았는데, 피트 끝나고 서로 많이 식은게 느껴져서.. 그냥 헤어지게 됐어.”

“웃긴다. 지가 뭔데 너에 대한 마음이 식는데?"


나는 이 때다 싶어 한껏 승희에 대한 기분을 맞추어 주었다.


“후후 그래도 나보단 나은 사람이야. 학교도 명문대 나오고.. 그냥 뭐 시간 좀 지나니 딴 여자도 만나보고 싶은가보지.”

“키는?”

“나보다 딱 2센치 커”

“야 됐어 됐어 니가 아까워. 우리 그냥, 약대 가서 더 좋은 남자 만나자.”


승희와 나는 남자 흉을 보며 한층 가까워졌다. 승희도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나 또한 외롭지 않은 피트 재수생활이 약대로 향하는 비단길이라 철썩같이 믿고 희망에 부풀게 되었다.

학기가 끝나고 난 다시 수험생활로 돌아갔다. 승희는 학기공부와 피트면접스터디를 병행했다. 하지만 점점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의 경쟁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가는 듯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인맥은 또 얼마나 넓은지 틈틈이 소개팅하는 여유도 있었다.

피트 면접 일정은 겨울에 진행되었다. 준비시간이 한 학기 급인 4개월 기간이라 그 지리한 시간동안 승희도 많이 지쳐가는 듯했다.

면접을 볼 정도로 시험을 잘 보지 못한 나는 학기를 마치자마자 바로 짐을 싸들고 독서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재수생활을 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아침부터 공부는 안되고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

‘다시 강의를 듣긴 돈이 아깝고, 혼자 공부하려니 뭘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모르겠고.. 누구한테 조언을 좀 들어봐야 하나?’


“따르릉”


승희의 전화였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승희 약대 합격 발표일이던가? 솔직히... 떨어지고 나랑 같이 재수 준비하면 좋겠다. 먼저 합격하면 배아플 것 같아.’


승희의 불합격을 기원하며 전화에 응답했다.


“응. 나야. 승희야”

“응. 잠깐 만날 수 있어? ”


예상대로 승희는 불합격.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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