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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니 Apr 08. 2024

수험생 사회-시작된 재수생활

실패로 끝난 나의 피트 수험생 에피소드 일기

“하.. 진짜 아깝게 떨어졌네. 걱정하지마 승희야. 다음엔 잘 볼 수 있을거야.”

“아. 별로 기댄 안했어. 워낙 점수가 낮았어서. 근데 막상 떨어지니까 속상하드라.”

“속상하지 아무래도...근데 승희야, 너 지금 어디 있다 온거야?”


뭔가 승희의 행색이 이상했다. 삐까뻔쩍 상의에 망사 스타킹. 평소 승희가 잘 꾸미고 다니는 것은 알았지만 아침부터 이런 의상이라니..? 뭔가 집에서 출발한 듯한 의상은 아니었다.


“나 사실.. 클럽 다녀와서. 집에서 온건 아니야.”

“크.. 클럽? 거기서 밤새고 온거야?”

“아니.. 그냥 거기서 누구좀 만나고..”


누.. 누구라니? 설마 원나잇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인가? 들으면 들을수록 승희의 다른 이면을 보는 듯했다. 말하고 있는 승희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들이 의심스러웠다. 


“수현아, 너 혹시.. 한달에 한번 나랑 클럽갈 생각 없니? 스트레스 푸는 겸.”

“아.. 그런곳은 나랑 안맞더라구. 그리고 지금 수험생 신분이기도 하고.”

“에이.. 한달에 한번인데.”

“승희야, 지금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상심이 큰건 알겠는데.. 우리 조금만 더 집중해서 해보자. 그럼 내년에 좋은 결과 나올거야.”

“...그래.. 그래야지.”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도 승희는 말이 어느정도 통하는 아이니까. 


“흠 근데 수현아..”

“응?”

“난 고민해봤는데.. 그냥 이번 상반기는 학교를 다닐까 해. 솔직히 초시도 아니고 재수인데, 이쪽 공부만 하면 긴장이 많이 떨어질거같아서. 난 좀 바빠야 공부에 집중하는 타입이라.”

“아.. 그렇구나.. 그래.. 난 강남 독서실 다니니까, 종종 연락하며 지내자.”


함께 공부하기 힘들다는 승희의 말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승희의 루틴이 나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종종 해와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승희와 헤어지고 독서실에서 앞으로 혼자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니, 외로움을 또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수험생활이 시작하자 엄마의 잔소리가 아침부터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이수현!! 너 어서 안일어나??"


엄마의 날카로운 소리에 잠이 부스스 깼다.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엄마.. 나 어제 3시에 자서 조금만..”

“수험생이 5시간 잤으면 많이 잔거지, 무슨 재수생이 이렇게 경각심이 없어?? 빨리 일어나서 독서실 가. 엄만 너 볼때마다 답답하고 한숨나와 알어?”


엄만 어제 여고동창 모임에 갔다왔다고 들었는데 또 거기서 한껏 자식 자랑 비교에 주눅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그래도 제일 힘든건 수험생인 나인데 이해를 못해주는 서운한 마음만 가득했다.


“정신좀 차려라 이수현, 너 까딱하면 서른 금방 된다. 그때까지 이렇게 살거야??”


제대로 못일어나고있는 내 모습을 보며 아빠도 혀를 끌끌차며 엄마의 잔소리를 거들었다. 


난 작년에 인간관계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저 부모님 두분에 비추는 나의 모습은 다 큰 성인이 됐는데도 자기들에게 기대려고만 하는 철부지 자식에 불과해 보였다.


“다들 좀 그만해, 난 뭐 노력안하고 사는줄 알아?”

“꼴에 자존심부려? 내 친구 딸 나래는 통번역대학원 졸업해서 지금 기자로 일하고 있고 옆집 애는 올해 행정고시붙었다드라.”

“그럼 옆집 애랑 나랑 자식 바꾸든가, 나 낳으라고 내가 시켰어?”


엄마와의 말싸움에 나도 빈정이 상해 차려놓은 아침상도 물리고 세수도 안하고 나가버렸다.


“저게 기껏 밥 차려놨더니!! 밥 안먹고 가???????”

“쾅!!”


현관문 박차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기분에 서럽게 눈물이 났다. 엄마와 한껏 싸우고 나왔더니 독서실에 도착해서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가 않았다. 부모님들은 내가 아무리 늦게 공부해도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나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듯했다.


‘이제부턴 아무리 공부 정리할 거 많아도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5시간밖에 못자니 머리도 너무 아프다.’


제대로 공부 시작하기 전 세수한번 하기 위해 독서실 라운지로 나왔다. 그때 얼핏 보고 지나가려던 게시판에 반가운 모집글이 올라왔다.


‘출석스터디 구합니다. 매일 아침 8시 독서실 입구에서 함께 모여 출석 확인하고 각자 독서실 자리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함께하실 분은 연락주세요. 010-XXXX-XXXX’


또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나.. 순간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불안감이 올라왔지만 아침 8시에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각자 자리로 들어가 공부하면 된다고 하니 안심하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곧바로 왔고, 다음날 떨리는 마음으로 출석스터디 장소인 독서실 라운지로 갔다. 라운지엔 키 크고 모범생 이미지의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석스터디를 모집하는 스터디장인 듯 싶었다.


“안녕하세요, 출석스터디 가입하고 싶어서 어제 문자보낸 사람입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남성 분도 허리숙여 인사에 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게시글에 글 올린 사람입니다. 출석스터디 함께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순간 뒤에서 깐깐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나도 왔어. 아 이분은..? 새로 오신 스터디원분?”


또다른 출석스터디원인지 여성분이 나를 두꺼운 뿔테안경을 낀 채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 안녕하세요. 전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전 김예림이에요. 실례지만 혹시.. 학교가 어디신지?”

학교..?? 썩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이런 질문을 받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죄송하지만 학교는.. 왜??”

“저희 스터디원들 전부 sky거든요. 좀 너무하다 싶을 수는 있는데, 학벌이 높은 만큼, 수험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긴 하니깐요.”


어이가 빠졌다는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슨 소개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출첵스터디에서조차 학벌로 차별을 당하다니 심한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예림아, 그 무슨 실례야, 초면인 사람 앞에서. 수현씨만 괜찮다면 저희 스터디에 들어오셨으면 하는데.. 불편한 상황 만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분이 중간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내게 사과했다. 나는 순간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약대에 합격해서 이 예림이란 여자얘 콧대를 눌러주고싶었다.


“스터디 할게요, 매일 8시에 나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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