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나, 너, 우리의 선택
"어서 오세요. 1인용 커피 동호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혼자 하는 인사, 누구도 듣는 이 없지만 홀로 카페에 가기 전 속으로 또는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이 말을 합니다.
카페는 제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좋아하는 이와 또는 일로 만난 이들과 여럿이서 가는 것도 선호하지만, 종종 혼자 가서 멍하니 있다가 오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갔던 카페들 중 더 마음이 가는 장소들을 모아 '1인용 커피 동호회'라는 이름 아래 기억하고 또 가곤 합니다.
일단 동호회 투어의 시작점은 을지로 '잔'입니다.
잔으로 택한 이유는 선택하면 떠오르는 카페가 이 곳이기 때문입니다.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지 않고 골뱅이 골목 쪽으로 걷다 보면 인도에 작은 입간판이 보이고 그 간판에 안내하는 곳을 따로 3층까지 약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잔이 나옵니다.
조금은 늦은, 30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인 2017년에 첫 직장생활을 을지로에서 시작했고 여전히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을지로가 힙지로로 불리고 인쇄 골목의 인쇄소들이 카페로 변하던 시절,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을 낙으로 삼던 시기에 비교적 일찍 찾은 카페입니다.
지금은 건물 2층이 힙한 맥주집으로 변했지만, 처음 갔을 때만 해도 2층은 오래된 인쇄소였기에 계단에 올라가는 이들과 인쇄소 아저씨는 서로를 신기해하는 눈빛을 교환하며 올라갔었습니다.
그렇게 올라가면 저렇게 많은 잔이 오는 손님들을 마주합니다.
때로는 반기는 것 같고, 때로는 과제를 던지는 것 같은 저 잔들 중에 원하는 컵을 고르면 카페 잔은 저기에 음료를 담아줍니다.
생각할 일이 많을 때 들리면 선택지가 하나 더 는 것 같아서 괜히 짜증을 냈지만, "뭐 하나 되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자 이 이상 좋은 카페가 없었습니다.
특히 위에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말이 나와야 했는데 나오지 않아 기획안이 반려되었을 때,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아 편집되었을 때 등의 상황에서 더욱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날이 좋으면 위로 올라가 루프탑 느낌을 즐기기도 하고
날이 흐리면 공연장처럼 꾸며진 내부에서 앉고 싶은 자리를 누렸습니다.
그렇게 있다 보면, 사회인으로 하는 고민의 무게가 자연히 덜어졌습니다.
"내 마음처럼 흘러가는 일 하나 없어도, 내가 고른 커피 한 잔과 잔 하나면 잠시라도 편해질 수 있다.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다."
그 사실 하나가 그냥 자연스럽게 툭하고 위로하는 친구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 줬습니다.
오늘의 '1인용 커피 동호회' 일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카페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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