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그만 빌고 싶어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산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즘 이 말을 마음 속으로 읊어야 하는 순간들이 제법 잦았다.


'현장'이라는 타이틀 아래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면서

겨울철 화재가 발생한 곳들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다녀왔고,

서울 중구 북창동의 식당에 갔다.


근처에만 가도 '아, 여기서 불이 났구나'라고

직감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탄내와 그을음이 눈과 코에 가득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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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 조각들, 불에 탄 목재들, 검은 흔적들

위로 쌓인 일상과 안타까움이 화재의 상흔을 덮는다.


은마아파트에서는 깨진 유리와 부러진 문을 어떻게 처리할지,

보험은 들었는지 등의 대화가 들렸고,

북창동에서는 당장 영업을 앞둔 인근 상인이 거리 통제에 항의하는 고성이 귀에 박혔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명복을 빌었다.


은마아파트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 한 가족에게


북창동에서는 불이 난 그 식당 앞에서

역주행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에게


대치동은 아니지만 학원가에서 자랐다.


학원가에서 공부하는 아이와

이를 응원하는 가족의 삶이

어떤 것인지는 안다는 소리다.


그 꿈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상황에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접은

한 청춘을 소소하게 위로하고 싶다.


2024년 역주행 사고가 있던 그 밤,

친구들과 그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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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카페로 향하는 길에

나는 원래 사고가 났던 곳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고자 했다.


그때 다른 친구가, 오랜만에 사대문 안에

온 김에 경복궁 쪽으로 걷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에

꽤 많은 소방차를 마주했고,

뉴스로 그 소식을 접했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갈랐다.


이 때 명복을 빌었던 것이

생생한데


사고가 났던 그 자리

앞에 있던 건물이 전소된 모습을

마주하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내 삶에서

명복을 빌 일이

몇 번이나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일단

이런 명복은 당분간 그만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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