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준다는 것에 당연함은 없다

by 박양배

상대가 나를 존중하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존중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을 높여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존중한다는 것은 개인의 인격을 바로보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존중함으로써 나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잘해주는 것도 이와 같다.

상대방에게 먼저 잘해야 상대도 우호적인 것이다.

나의 배려만큼 상대방도 내게 잘해 주기를 바라지만 성격, 상황에 따라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100%을 줬다고 상대도 100%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체감하는 것이 70%라 해도 상대는 다 주었을 수 있다. 100대 100 개념이라면 나는 상대방과 거래 관계인 것이다.


누군가를 통해 나의 성취감을 전부 채울 수 없다.

무엇이 나의 성취감을 채워주는 것일까?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어떤 자리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일 수도 있고, 물질을 채우는 것일 수도 있다.


성취감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할 때 어려움에 부딪칠 수도 있다.

해결하기 위해 인적자원을 통해 시간과 노력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이때, 과거 자신이 도움을 주었다고 100%를 바라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게는 50% 정도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해도 적당한 양념비율이 맛을 극대화한다. 소금 한 스푼이면 되는 것을 한 컵 넣는다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된다. 나의 이성적인 판단이 어쩌면 소금 한 컵일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양념처럼 적정량이 있다.

사람에 따라 반스푼만 줘도 잘 살아날 사람에게는 그만큼만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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