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속옷에 관한 고찰
속옷 중엔 정말 예쁜 속옷이 많다. 겉옷을 심플하게 입곤 하는 나로서는 속옷만큼은 화려하게 입고 싶었다.
그래서 블랙프라이데이, 속옷 세일하는 기간에 왕창 속옷을 샀다. 그중엔 레이스가 달린 것, 줄무늬가 있는 것, 꽃무늬가 있는 것, 작은 땡땡이, 큰 땡땡이, 엉덩이 부분이 망사로 된 것. 정말 색상도 무늬도 다양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화려한 속옷에 끌려서 이것저것 많이 사두었는데, 정작 입지를 않는 것이다. 어떤 건 너무 남사스러워서 싫고, 어떤 건 브래지어 와이어가 답답해서 못 입겠고, 또 다른 건 레이스 무늬가 고스란히 겉옷에 비쳐서 꼴 보기 싫어서 못 입었다.
“아!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더 요염한 속옷도 잘 입는데,
왜 난 많이 사놓고 입지를 못 하니.”
심지어 망사 속옷과 호피 무늬 속옷까지 사놓았는데 말이다. 내가 화려한 속옷을 못 입는 이유는 딱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브래지어의 와이어가 조이거나 어깨끈이 까슬거리거나 하는 등 불편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속옷의 무늬나 색깔이 고스란히 밖으로 비치기 때문이었다. 흰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브래지어의 땡땡이 무늬나 꽃무늬가 겉으로 드러나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눈물을 머금고, 화려한 속옷들을 옷방의 가장 안쪽 서랍에 처박아 둘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아까워서 못 버리지만 조만간 버리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결국 난, 속옷도 겉옷과 마찬가지로 안전빵으로 고르게 되었다. 아무 무늬가 없는 심플한 디자인의 무채색 속옷으로. 흰 옷을 입을 땐 흰색 속옷으로, 검은색 옷을 입을 검은색 속옷으로 맞춰 입이면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파스텔톤 옷을 입을 땐 흰색으로, 검은색을 제외한 어두운 계열 옷을 입을 땐 속옷 색에 관계없이 아무 거나 입으면 될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빠밤!
이번엔 브래지어의 윤곽이 여름철 얇은 옷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겠는가. 물론, 여름옷이라고 해도 원단이 도톰한 옷은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하늘거리는 옷을 입을 때 브래지어의 봉제선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내가 땡땡이, 꽃무늬 속옷을 어떻게 포기했는데 이번에도 문제가 생기다니. 아무리 무채색에 심플한 속옷이라고 해도 얇은 여름철 옷을 걸치면 브래지어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심지어 그런 속옷을 입고 있노라면 문밖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갈 때조차도 신경이 쓰이곤 했다. 혹시 누군가 내 가슴께를 바라볼까 봐, 괜히 팔로 가슴을 가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속옷을 폭풍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곧 해결책이 생겼다. 그건 바로 봉제선이 드러나지 않는 브래지어, 또는 브래지어를 품은 나시였다.
요즘엔 특히 젊은 여성들이 편한 걸 좋아한다고 한다. 거리에 나가면 바지도 넉넉한 와이드 팬츠, 벨트가 필요 없는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신발도 편한 걸 좋아해서 7cm 이상의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여성은 거의 없다. 속옷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속옷은 기능성 위주의 편안함을 강조하는 속옷이 대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무채색의, 봉제선이 드러나지 않는, 입고 벗기 편하고 시원한 속옷이 인기를 끌게 됐다.
유니XX의 에어리즘 브라탑, 또는 입을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는 브래지어 등. 요즘 속옷들은 다들 심플하고, 시원하며, 실용적이다.
덕분에 난 이제 더는 브래지어 걱정을 안 하고 산다. 검은색, 흰색 브라탑으로 1년 365일 속옷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입지도 않을 속옷들, 땡땡이, 호피 무늬, 줄무늬, 꽃무늬 속옷들을 전부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야겠다. 오늘 당장 버릴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