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즐겨 보던 만화영화가 있다. 마징가 제트다. 위험에 처할때마다 악당들을 물리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마징가. 아직도 노랫가사가 잊혀지지않고 입가에 맴돈다. 기운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아젯. 무쇠로 만든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는 힘의 상징이요, 문제해결의 대명사다. 내 아내는 살아있는 인간 마징가다
아내는 2개의 대학을 졸업하여(사범대,간호대) 교사가 되기도 하고 간호사가 되기도 했다. 사범대 지구과학교육과를 나왔지만 선교단체에서 전임사역을 하느라 임용고시 준비를 못했고 나와 결혼한 후, 두 아이를 갖고 나서야 준비를 했으니 쉬울턱이 없었다. 험난한 가시밭길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당시만해도 지구과학은 비인기 과목으로 시교육청이나, 도교육청 모집인원이 한두명이었기에 하늘에 별따기였다. 코흘리개 어린 두아들을 시댁과 친정에 맡기기도 하였고 내가 섬으로 발령이 났을때도 네식구가 관사에 사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임용시험을 준비하였건만 실패의 쓴잔을 연거푸 마셔야 했다.
섬에서 나온뒤 간간히 기간제 교사 자리가 생겨 10여년간 간헐적으로 예닐곱개의 학교를 전전긍긍 하며 옮겨다녔다. 그후 기간제교사 자리도 나오지 않자 정규직종에서 일해 보고자 간호사직을 택했다. 30대 후반에 편입으로 4년제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가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같은과 학생들은 15년이상 되는 후배들이었고 교수들도 아내와 비슷한 연배였기에 한참어린 후배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하고 같은 연배의 교수들에게 자존심 상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두아이를 가진 가정주부로서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예전같지 않은데 새로운 학문에 그것도 암기할것도 많은 간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내는 해내고야 말았다. 4년제 대학에 편입하여 2년의 간호학 전공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있다가 시골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큰 정신병원에 3교대로 일하게 되었다. 많게는 1년 적게는 두 세달 근무하고 언제 나와야할지 모르는 기간제 교사와 달리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을때까지 일할수 있어서 좋긴 하였다. 그러나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3교대로 출퇴근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뿐인가 낮과 밤이 바뀌었다. 남들 잘때 일하고 남들 일할때 자야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어렵살이 다니게된 병원 직장도 세째를 갖게된 바람에 2년도 안되어 그만 두어야 했다. 출산과 육아로 수년이 지나갔다. 이젠 나이가 들어 3교대 근무가 쉽지가 않을 뿐더러 뽑아주는 병원도 찾기가 어려웠다. 이제막 졸업한 아가씨 간호사를 쓰려고 하지 나이먹은 아줌마를 쓰지 않는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간간이 자리가 나는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고나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한을 받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날들이 계속되자 삶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내는 인근 시골에 밭이라도 사서 텃밭을 일구며 코로나 시국을 극복해 보고자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것이다.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우리부부는 교회 아는 집사님을 통해서 집에서 차로 20분정도 걸리는 곳에 밭을 구입하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나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을 보고 자란 아내를 믿고 하자는 대로 하였다. 농사를 지으려면 필수요소가 물이다. 그래서 거금을 들여서 지하수를 파게 되었다. 지하수를 파려면 전기시설도 필요했기에 전주도 세우고 모터펌프와 계량기도 설치하였다. 또한 농기구도 보관하고 잠시 쉴 공간도 필요했기에 농막으로 사용할 비닐하우스도 지어놓았다. 어느정도 구색이 갖추어졌다. 이제 씨앗만 뿌리고 거두어들일 일만 남은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행복끝 고난의 시작이었다. 장밋빛 꿈은 사라지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같은 나의 얄퍅한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 했다.
300평이 넘는 밭을 일구기 위해서 삽으로 땅을 갈아 엎어야했다. 처음 삽질을 하는데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그러나 말없이 표내지 않고 우직하게 땀흘려 삽질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이 부끄럽기고하고 도전이 되기도 했다. 몇날 며칠을 하다보니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뻐근하고 이러다가는 제명에 못살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삽질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내도 이런식으로 하면 안되겠다 싶어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기를 빌려왔다. 평일에만 빌리수 있기에 나는 직장에서 일할때 쉬고 있는 아내가 빌려다가 관리기를 운전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젊은 여자가 혼자서 밭가는 모습을 보고 보통여자가 아니라며 혀를 내두렀다고 한다. 관리기는 경운기보다는 작지만 비슷하여 조작이 간단하지도 않고 힘도 써야하는 위험한 농기계다. 이런 농기계를 한번도 운전해 본적이 없는 아내가 그 넓은 밭을 다 갈아 엎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신기하기조차 했다. 주위 사람들이 남편은 뭐하는 작자이기에 젊은 아내에게 맡기고 코빼기내도 보이지않느냐는 말을 들을것같아 조퇴하고 가보기도 했다. 내가 운전을 해보고자 했지만 아내가 나를 못믿는 것인지 관리기를 주지 않았다. 내가 해보겠다고 말은 했어도 겁이나고 자신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튼 내 아내는 대단한 여자다. 인간 로봇 마징가다.
밭농사는 밭만 갈아 엎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 좋은 밭으로 만들기 위해 퇴비도 뿌려주고 잡초도뽑아주어야 좋은밭으로 거듭나게 된다. 전에 밭주인이 돈을 벌 목적으로 한해에 여러 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농약도 많이 많이 했을것임에 틀림없다. 한 작물이 끝날때마다 검정비닐을 깨끗하게 걷어내고 트랙터로 로타리를 쳐야하는데 게을러서 묻혀 있는 상태로 갈아엎어 땅이 파도 파도 비닐 조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아내는 농약과 비닐조각으로 죽어가는 토양을 살리고 친환경 농법으로 작물을 심고자 유튜브영상을 보며 갖은 노력을 하였다. 먼저 땅에 묻혀있는 비닐조각들을 제거했다.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액비를 사용했다. 바닷물이 좋다는 정보를 듣고 인근 바닷가로 가서 말통으로 길러다가 밭에 물과 희석시켜 뿌려보기도 했다.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모아서 밭에 가져가 퇴비로 만들었다. 친환경 농약을 만들어 보고자 도로가에 떨어진 은행알을 주어다가 사골 끓이듯이 고아서 나온 은행액을 뿌려주었다.
뭐니뭐니해도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풀은 가을이 오기까지 극성스럽게 자라 온갖 작물들을 망쳐놓⁹는 장본인이었다. 친환경 토양과 농법을 고집하던 터라 농약은 할수없어 제초기로 깎아야 했다. 깎고나면 일주일이 멀다하고 풀은 언제 깎았는지 모를 정도로 왕성하게 자라났다. 도로아미타블이라는 주문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풀만 있는곳은 예초작업을 할만하다. 작물사이사이에 나있는 풀들은 일일히 손으로 뽑아야하기에 죽을 노릇이다. 풀만 없다면 농사는 해 볼만하다고 푸념 섞인 말을 해보지만 희망사항이다. 토양을 살리고 친환경 농법으로 가기 위해서는 풀은 우리와 공존할수밖에 없고 친근함으로 다가가야할 대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지금은 충전식 전기예초기로 풀을 보는 즉시 친근함으로 다가가 깍아 주는 풀킬러가 되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농사에 ‘농’자도 모르던 내가 아내 덕분에 농사일에 손을 댔지만 아내가 모든것을 주도적으로 해왔고 나는 약간만 거들어 주는 보조자 역할만 했다. 텃밭을 일군지 4년차에 접어들었다
아내는 농약으로 죽어가는 땅을 친환경 토양으로 바꾸어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몸이 열개라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들을 아내는 하고 있어 나는 마징가라 부른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요. 집에오면 살림주부요 농사꾼으로 1인 다역을하는 생활력 강한 아내, 마징가와 살면서도 나는 감사하지 못할때가 있다. 이런 아내에게 반찬투정하고 요구심정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아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친절한 남편이 되지 못할 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은것부터 실천하고자 마음을 먹곤한다. '퇴근후 씽크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식기들을 내 몫이다 생각하고 설거지 해야지. 쓰레기 분리 배출, 집안 청소 등은 내일처럼 하는 습관을 들여야지.' 작은 실천으로 아내에게 감동을 주고 사랑받는 남편이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실제로 내가 아내보다 직장에서 빨리 올때면 우렁색시마냥 설거지도 하고 밥도 안쳐놓고 쓰레기 분리 배출까지 잽싸게 해놓고 안한것처럼 아내의 반응을 기다린다. 아내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녹초가 되어 들어오지만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작게 나마 위안이 된 듯 표정이 밝아진다. 그러면 나는 우스겟소리로 우렁색시가 왔다 간 것 같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끌어본다. 그럴 때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감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것 같다.
내 아내는 우리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마징가처럼 능력 많고 모든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내는 해결사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인 내가 더 의지할려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그래도 내 아내는 여자다. 남편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할 존재다. 좀더 아끼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할줄 아는 남편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