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에 4,50대로 보이는 여성 세 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분들은 음료 주문은 조용히 친절하게 하셨지만 5분도 안돼서 귀청이 떨어질 만큼 목소리가 커졌는데 그 덕에 한순간에 부드러웠던 카페 분위기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한 분은 중재자였고 두 분은 파이터였다. 서로 치열하게 가슴속에 쌓여있던 화를 표출하기 시작하는데 원래 남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순간 그 대화에 섞여 고개를 끄덕거리고 저으며 속으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한 분은 원망으로 가득한 응어리가 수만 개는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응어리를 받는 다른 한 분은 자포자기인 듯 착잡한 눈에 고개 숙인 얼굴뿐이어서 그 상황이 왠지 안타까웠다.
화는 어떻게 표출해야 가장 이상적일까?
그분들의 진지했던 그 감정들을 이야깃거리로 삼는 건 아니다.
그저 어떨 땐 나도 이랬었고 또 가까운 시일 내에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어 되도록 이상적인 방법을 찾고 싶어 졌다.
분노-> 원망-> 애원-> 설득-> 분노
한분은 분노에서 원망을 또 당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걸 설득 내지 종용하며 다시 화를 내는 걸 반복하였다.
대화의 시작은 그동안 얼마나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었는지에 대해또 그들만의 소중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물꼬를 틀었지만 갈등의 시점과 사건 상황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순간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가 표출되어버린 듯했다. 그분은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어 보였다.
모든 대화를 적을 순 없지만 한 마디로 '넌 그렇게 하면 안 돼'였다.
그리고 원망 섞인 말이 시작되었다.
"널 얼마나 믿었는데."
"네게 얼마나 의지했는데."
"넌 다 떠나서 내 편이어야지."
이런 말을 들으니 급 찔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가 가끔 썼던 말은 '넌 내 편이어야지'였는데 우기는 나도 억지인 걸 알지만 친한 만큼 내 편이 아닌 것에 대한 그만큼 서운한 것도 없지 않나. 그분의 울먹이며 원망하는 모습에 처음으로 그분이 걱정됐다.(그전까진 너무 시끄러워 짜증이 났던 참) 하지만 듣는 사람에겐 얼마나 지치고 힘 빠지는 말인지도 안다.
바로 저 말들은 엄마의 단골 멘트이기 때문.
이때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에게 모두 공감을 해버려 듣기가 괴로웠다.
오히려 쌍방이 큰 소리로 같이 싸우고 내가 맞고 네가 틀리네 소리칠 땐 그분들의 관계가 괜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널 얼마나 의지했는데"부터 "난 요즘 잠도 못 자. 약도 먹고 있어"까지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애원하듯 설득할 때는 지금까지 얼마나 상처 받고 마음이 아팠으면 이러실까 생각이 들면서도 그 말이 협박처럼 느껴졌다. 큰 소리에는 큰소리로 맞부딪혀왔던 관계에서 상대방의 약한 모습과 "넌 내 편이지. 이제 안 그럴 거지?"를 반복하여 확인받는 동안에는 작은 한숨과 고개만 푹 숙일 뿐이었다. 확인받고자 했던 분도 역시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했다.
대화는 결국 분노로 끝을 맺었고 도돌이표처럼 수순이 반복되어버렸다.
p.s
그분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는 아니다. 다툼의 경위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 (나하고 친한 네가 어떻게) 그에게 평상시 썼던 호칭을 썼다는 이유였다.
난 욕이 나오는데 넌 어떻게 내 앞에서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가 있어.
그분들이 가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화를 어떻게 냈지? 이런 적이 없었을까?
소리 지르며 화를 낸 기억은 한두 번 정도인 듯하다.
첫 번째는 재작년 4주간 교생실습을 하던 때인데 그 시기엔 너무도 바빠서 남자 친구와 만나지도 못했다.(장거리 연애 중) 연락도 잘 되지 않던 나에게 남자친구는 참다 참다 한 마디 서운함을 표현했는데 당시 나는 학교 실습이 끝나면 본래 일터로 돌아가 다시 수업을 진행하고 틈틈이 하반기 사업 준비로 여러 가지 신경 써야 될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그해 논문 발표가 있었고 한 번에 통과하겠다는 일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그곳에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이렇게 바쁘게 지내도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이 없었다는 점이다. 교생실습에 시간을 쓰니 수입은 개인적인 저녁 수업밖에 나올 구멍이 없었고 자연히 평균 소득의 절반 이하밖에 벌지 못했다. 일한 만큼 번 돈이어서 억울할 것도 없지만 그냥 바쁜 와중에 돈 걱정까지 하게 되니 너무 서럽고 힘들었다.
남자친구도 한가했던 건 아니다. 그저 평소에도 자주 못 보는 만큼 통화라도 조금 더 길게 하길 바란 것뿐인데 "너무 연락이 안 되는 거 아니가"라는 한 마디에 집에서 씻고 나와 이제 한숨 돌리려던 참이던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짐과 동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일부러 안 해? 나도 힘들어. 왜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해까지도 못한 듯하다. 바로 울음이 터져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댔으니. 고작 한 마디밖에 안 한 남자친구가 얼마나 놀랬을까. 미안하다며 달래준 그에게 쌓여있던 속마음을 말했다.
"나도 못 쉬고 바쁜데 이 조금 벌려고 쉬지도 못하고. 할 건 많고"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는데 남자친구는 잘 알아들었을까?
울음이 그치자 남자친구는 다정하게 "다 울었나. 미안하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더 울어. 더."
"아냐. 다 울었어." 나도 모르게 민망해서 웃음이 나왔다. 졸지에 내 서러움을 다 받아주고 위로해준 그에게 고마운 순간이었는데 만약에 욱하듯 서러움을 표출한 내 모습에 그가 한숨을 쉬었다면 내 마음이 어땠을까라며 가정하기도 했다. 운이 좋아(좋은 사람이 옆에 있어) 마음이 빨리 진정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오래되고 반복된 아픔은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엄마와의 다툼에서였다.
이번엔 반대였다. 엄마는 다른 곳에서 화가 많이 나신 상태였고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와 외출을 하려던 상황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엄마한테 미리 전화를 안 했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시는데 정말 억울했다.
약속 당일, 출발 전 전화를 드려 1시에 대문 앞에서 보기로 했다(난 다른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도착 예정 시간에 엄마가 나오시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 맞춰 차에서 전화를 하니 이미 엄마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분명 타지에서 출발할 때 전화를 드렸고 다시 한번 문 앞에서 전화를 했는데 이게 무슨 일? 이런 적은 꽤 많았기에 나도 그냥 "아이고 알았어 미안해 엄마"라고 했으면 좋았겠지만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기엔 내 속이 불탈 것 같았다.
"왜 다른 데서 화난 걸 나한테 풀어!!!"의 반복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다툼은 커져 잠시 주차를 하고 엄마와 제대로 다투기 시작했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볼 만큼 서로 격양돼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래 내가 그래도 딸인데 엄마랑 이렇게 싸우는 건 안된다. 친구도 아니고'라는 생각이 들어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게 더 엄마의 속을 긁었나 보다. 내가 차분해지려 할수록 엄마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커지는 것이었다. 사실 목소리가 높든 안 높든 먼저 "무슨 일 있었어 엄마? 내가 전화를 미리 했으면 됐는데. 미안해 엄마"라고 하면 싸움이 종료되는 걸 알아도 말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목적지인 영화관 앞에 와서야 엄마의 화가 먼저 풀어졌다. 다행히 다툼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뒤에도 내 속엔 불씨가 남아 있었고 결국 그 하루 끝에 애먼 일로 엄마에게 화를 냈다.
소리를 질렀다는 경우 하에 단 두 가지 경험만 적었지만 내가 힘들다고 관계없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친 적은 분명히 있었다.
정해진 것도 없고 이대로 100%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에야 와서 내가 '화'를 표출하는 가능한 이상적이면서 해볼 만한 방법은.
분노-> 원망-> 애원-> 설득-> 공감/인정
인 듯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낄 때 참을 인 세 번을 속으로 되뇐다지만 그것은 수직관계에 놓여있을 때 어떻게든 참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으니 가능한 것 같다. 그 외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에서의 분노와 원망까지는 인간적으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사실 서로 소중히 대하는 사이에서 원망 섞인 말들을 듣고 나면 '나도 힘들었는데 너도 나만큼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 마련이다. '그래 나한텐 별 거 아니었던 일들이 네겐 더 크게 와닿았을 수도 있겠다'와 같은. 일단 나는 거의 모든 다툼에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내게 상처 받은 점을 소리치든 조용히 말하든 '이때 네가 정말 미웠어'라는 등의 원망을 들을 때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고 공감과 인정을 하게 됐던 것이다. 말이 안 통할 정도로 소리 지르면서 말하는 사람에겐 예외이다. 그럴 땐 '왜 이러지?'라는 생각만 들뿐. 그. 래. 도. 관계를 이어나갈 생각이 있다면 그 화가 조금 누그러질 때까지 일단 참는 편이다.
오랜 친구사이였어도 그동안 안 맞는 부분을 많이 참아왔던 관계라면 한 명이 결단을 내서 그 관계를 끊는 것도 용기 있는 방법이고 상대방이 심적인 여유를 되찾을 때까지 힘든 시기를 같이 지나가 주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시시각각 누군가에 대한 감정과 관계가 달라지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이 말을 신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