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추억이라기엔

나는 언제부터 성격이 이랬을까?

by 하비

남들보다 조금 늦게 교육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교육철학 수업 중 교수님은 뜬금없이 날 보며 말씀하셨다.

"이 안에서 교수가 나온다면 그건 최 선생이 될 겁니다."

'저요?'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셨다.

"하지만 자아정체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조금만 부드러워진다면.. 좋을 텐데요."


보기 드문 특별한 말씀이었지만 옆에서 제 일처럼 들뜬 친구에게 내 표현을 맡기고 조용히 있는데 속으로는 감춰뒀던 자의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김과 동시 갑자기 마음이 확 가라앉아버렸다.

'그럴 수 있었는데 조금 놓친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놓칠 것 같아요.'


사실 나도 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이미 두 번은 놓친 게 아닐까 하고.

1. 내 분야의 대부분 모든 이가 원하는 곳의 입사 제의 거절

2. 집안 좋고 돈 많은데 성격도 괜찮은 남자의 결혼 제의 거절

좋은 직장을 거절한 이유는

직장이라면 당연하게도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싫었고 그럴 거라면 내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오만 심보인 걸 안다).

결혼을 거절한 이유는 말 그대로 제의였기에.


결혼할 사람의 경제력보다는 나에 대한 마음 하나만을 보는데 그래서일까. 내가 결혼을 생각하는 그 사람은 경제력이 부족한 편이다. 게다가 나도 부족한 편. 만나면서도 갈팡질팡한다. 난 정말 마음 하나만을 볼까? 내 진심은 뭘까?

어렸을 적부터 축구경기를 봐도 꼭 지고 있는 팀을 응원했고 관심 없던 아이돌도 누가 물어보면 팀에서 제일 인기 없던 사람을 팬이라고 지목하곤 했다. 왜 그럴까?


내가 나에 대해 궁금해짐에 글을 쓰며 성격의 발단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열 살 때 일이다. 나에겐 평상시와 다름 없는 하루였는데 그 날은 아빠가 낯선 아파트로 오빠와 나를 데리고 갔다. 아빤 우리에게 계속 옥상에서 떨어지자고 했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뿐이라며, 아빠가 시뻘개진 눈으로 우리에게 말했는데 오빠는 그 말을 이해했을까? 고작 두 살 밖에 차이 안나는데.

일단 난 이해가 안됐고 아빠한테 반복해서 말했다.

아빠. 난 안 죽을 거니까 엄마한테 데려다줘.”

단호한 내 말에 아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고 조금 있다가 우리는 엄마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본 순간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것 같다.

“아빠가 옥상에서 같이 뛰어내리자고 했는데 난 싫다고 했어. 아빤 지금 거기에 있어.”

엄마는 일터에서 돌아와 욕실에서 씻고 있던 참이었는데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의 눈빛은 울먹이며 나를 애타게 설득하려 애쓴 아빠의 눈빛이 안쓰러워질 만큼 동요가 없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이 조금 전의 상황이 별 거 아닌 일 정도로 내 기억에 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엄마는 모를 것이다.


지금은 엄마와 웃으며 이야기한다.

“참, 그때 네 오빠는 울고만 있는데 넌 싫다고 절대 안 죽을 거라고 그랬지.” 나도 맞장구치며 “그치. 나 없었음 오빤 그대로 갔을 거야”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생각해보면 다음 날 친구와 정말 재밌게 놀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평범하게 잘 놀았기 때문이겠지.


그날 이후로도 아빤 우릴 많이 포기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 끝에는 이혼 서류.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다는데 엄마와 주변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무 똑똑해서 그래."

"너무 똑똑해도 못써."


아빠의 머릿속 체계는 사기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난 자연스레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나를 힘들게 할 사람

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눈길이 가면서도 만나기는 꺼려진다. 아빠는 굳이 이성이 아니더라도 사람 보는 내 눈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한 자, 한 자 적는 동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뿌리 깊은 선입견은 내게 무언가 시작도 하기 전 움츠러질 모습을 만들어줬다.

단지 어렸을 때 일이라면 일이지만

자격지심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나에게 오는 좋은 기회와 좋은 사람들을 놓치게 될까 봐 칭찬을 들어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자라면서 좋은 사람들이 항상 옆에 있어줬기에 마음의 안정과 자존감이라는 것도 많이 높아졌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도 변화해야겠지?



글은 조금 수정했다. 다시 내 글을 읽고 있는데도 아직 변화한 게 없는 것 같다.




p.s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며 지금은 아빠와 따로 잘 지내 중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되면서 그간의 아빠의 괴리와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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