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삶

by 하비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질 기회가 있다. 선택이란 지금보다 성공하는 기회를, 발판을 잡는 것에 대해서만 국한된 걸까?

나는 어릴 때부터 가정상황에 맞춰 살지 않았기에 나와 비슷한 또래 또는 누군가가 뭐가 됐는 이젠 내가 선택한다는 말들이 오히려 생소하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부모님이 시키는 데로 살았나 보다.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영향력이 그렇게 컸다는 게, 이 힘든 시대에서 성공한 듯 평범하게 살다가도 그게 사무쳐 지금까지 와 다른 각오와 용기로 다른 결정을 한다는 게. 그냥 조금 신기하다.

신기하다는 표현이 실례일 수 있어도 고치지 않는 건 순전히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았구나 싶어이고 이따금씩 내가 부러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상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져서이다.


한동안은 이런 사고방식에 잡혀 있었다.

200만 원을 번다면 것에 맞춰서 살면 된다.

150만 원이 벌이가 됐을 때도 80만 원이 벌이가 됐을 때도 그랬다. 그건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지만 그땐 그런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으니 다행인 건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선택했으니 괜찮아.

못 살아도 곧 죽어도 난 내가 주체적으로 살았어. 내가 주인으로. 상황은 괜찮지 않았고 속은 뭉그러졌지만 다른 선택을 하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은 그렇지 않은 마음에 비해 적었기에 아직은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순 없다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때도 내 고여있던 생각은 변하진 않았다. 생각은 안정적이어진 지금에야 단순하게 전환됐다.

지금의 내 생활이 계층이 올라가는 정도의 안정적인 건 아니지만 먹고 싶은 것을 제때 먹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선물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 그렇게 계속 소소한 돈을 쓰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오래가지 않을 시간인 걸 알지만 지금껏 없던 목표의식이 생기니 후에라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불안하지도 않다.


아직도 자기 계발서는 싫지만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은 좋다.

지금 느리게 읽고 있는 책.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는 읽고 있는 초반엔 수수께끼 같고 어쩌면 말장난하는 것 같은 질문에 그럼 뭐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해설을 읽으면서는 작가님이나 그렇게 잘하고 있어요?라고 혼자 되묻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처럼 생각이 많은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어 서점에 들어가 주문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책은 왔지만 선물은 하진 못했다. 뭔가 아빠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았고 아빠가 뭔가 깨달았음 좋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그대로 전해질 것 같아 새 책은 내 소장용으로 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스님들도 실수를 하는데. 어제 본 tv 프로그램에서는 60세가 넘은 어른들도 실수를 하던데. 하며 방어막이 생긴다. 그럼 나도 아직은 실수가 있어도 괜찮을까? 더 나아지는 쪽으로의 선택이 선택이라고 불리는 거라면 내가 내리는 결정들은 그저 뭐가 됐든 경험해보자라는 자포자기와 같은 거 같은데?

내가 거부감이 드는 말 중에 하나는 유전은 너무나 세고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더 자포자기하듯 다른 결정을 내리고 싶어 진다.

타인에게 나를 내보이기 싫고 원치 않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살쾡이처럼 노려보던 내가 지금은 많이 평온해지고 유해져 마음그릇까지 넓어진 게 보이는데 나도 결국 높은 확률도 부모님이 했던 선택들을 하게 되는 걸까?

누구의 말도 듣기 싫었던 이유는 내 삶을 바꿔보겠다는 의지였지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불리하게 보이는 건 능구렁이처럼 피한다. 이상적인 환경에서 컸을 거란 생각에 결혼 적령기라는 나의 나이 앞에 묻지 않은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를 보려면 부모를 봐야 한다. 집안을 봐야 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말을 하며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 대한 문제점을 나열하고 공감을 요하는 나를 아끼는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자들이 저를 피해야 되겠어요.

가끔 솔직하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직은 입을 꾹 닫는다. 용기가 없는 탓이다.


전에는 외로워서 했던 선택들이 많았다. 그날의 선택들은 이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경험을 남겼지만 아직도 무수히 선택할 일들만 남은 일생에 외로워서.라는 보기만 피한 내게 어떤 다른 보기들이 가득할지 아니 까마득하다.

어떻게 살면 될지 어떤 선택을 하면 될지 방법은 안다. 모두가 말해줘서 알지만 난 여전히 그들이 틀릴 수 있고 내 인생엔 그게 맞지 않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정체하고 있을까 퇴보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 꼭 남의 인생을 보는 것처럼 궁금해진다.

나아가고 있다. 다행히 금세 대답을 했다. 내 감정과 더 나아진 생활이 증거이다. 또 나만 아는 이기적인 면에서 사람들과의 정을 많이 느끼고 주고받으며 지내는 지금 난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동안 내게 있어 돈은 선택의 기준이 되진 않았다. 불안정한 부모님을 원래부터 무리하게 도와드리지 않았고 나만 생각하여 내가 쓸 여윳돈 정도만 있으면 됐었기 때문이다. 내 삶이 중요했고 집안의 안정보다 내가 행복할 삶을 추구했기에 마음이 여유가 생겼고 나아가 자라온 환경과 과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싼 똥은 직접 치워.라는 심보와 이제 후회해?라는 복수 어렸던 마음도 내가 나에게 집중하며 살자 과거의 일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영을 다닌다고? 운동을 다닌다고? 택시 탔어? ktx 탔어?

불안정했던 나의 과거를 아는 나의 나이 많은 지인은 질타 어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허리가 안 좋아 수영을 해야 돼요. 허리가 안 좋아 운동을 해야 돼요. 수업하고 얼른 학교를 가야 해서 시간이 없어 탔어요.라고 대답했다. 고작 이런 일들에 왜 그랬는지 설명을 해야 했고 그게 화가 나고 지쳐 내가 하는 일과 하려는 일들에 대해 입을 꾹 닫았다. 점점 대답도 짧아졌고 변명하듯 말해야 하는 표정에서 그게 뭐.라는 눈으로 대답하기까지의 기분 나쁜 시기가 지나갔다. 그 시간 속에 지인분도 변했으며 나도 변했다.

수급자이던 학생 시절. 어느 공무원 아저씨는 쌀을 지고 우리 집에 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같이 있던 나를 보고 잠시 나오라고 했다. 아저씨는 내 얼굴에 양손을 대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기분이 더러워야 했을까. 가벼운 입맞춤이었는데 중학생인 내게도 너무나 의아한 일이었지만 아저씨는 뭔가 울 것 같은 눈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기억은 문득문득 떠오른다. 아저씨는 몇 마디 하셨고 그건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이었던 듯하다. 고등학생 때도 학교에서 쌀을 주는 날이면 혼자 낑낑대며 집까지 가져왔다. 기질이 그런 걸까? 보통의 학생들이면 창피해했을 일도 내겐 나와 상관없는 일들처럼 느껴져 창피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아 괜히 지기 싫다는 생각에서 강하게 나갔으니 학교에서도 친구관계가 좋았고 내게 창피를 주거나 놀리거나 하는 친구도 없었다. 난 친구들이 다가오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이제야 벽이 조금 허물어졌지만 그땐 관계의 폭이 굉장히 좁아 친구들을 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냥 한 번씩 생각한다. 난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아직도 눈물이 많은 건 조금 아쉽다. 방금 전 그 아저씨의 눈을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내가 조금 더 변했으면 좋겠다. 그때는 세수하면서 울었다. 밤마다 자기 전에 베갯잇을 적셨고 학교에 가면 웃었다. 다행히 갑자기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 아침에 눈 뜨고 자기 전까지 그 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고 행복해졌다.

그 아이와 말도 한 번 못 섞은 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5년을 좋아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애는 내가 좋아하던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갑자기 반해버려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좋아하게 된 애였는데 어쩌면 내가 행복해지려는 도구로 자의적으로 반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인과 관련된 어떤 안 좋은 결정을 내린 후에도 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전혀 없던 난 어느 순간 사람들과 정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 나만을 생각했던 기준에서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생각하게 되니 무엇인가를 결정하기도 어려워졌지만 다행히 냉정한 성격이 남아 있어 그것을 믿고 정에 휩쓸려 내게 독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아니 모르겠다. 이젠 조금 회피하고 있는 중이다.



그냥 오늘 할 일들을 생각해보자. 생각을 던진 후 이번 주까지 해야 할 일들을 선택했다. 다행히 기분이 나아졌다.

이번 주 점심은 도시락을 싸올지 사 먹을지. 사 먹는다면 뭘 사 먹을지. 싸온다면 뭘 사 올지. 저녁은 제육볶음으로 할까.

먹고 싶은 건 많아 내 먹을 걸 생각하자 다시 에너지가 도는 느낌이다. 마음이 조금 그럴 땐 곧 밥때를 떠오르는 게 기분을 한 껏 올라가게 해 자주 쓰는 방법이다.

좋은 방법인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자라도 웃었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보니 오전이던 게 벌써 점심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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