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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y 21. 2022

댄스 금지

목공 단상 3

  목공방에는 몇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아래 사항은 내가 배운 공방이나 우리 공방뿐만 아니라 다른 공방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사항일 것이다. 


소매가 넓고 긴 옷, 팔찌, 긴 목걸이, 묶지 않은 긴 머리카락, 후드 끈 등 모든 너풀거리는 것을 착용하는 것
: 회전하는 날에 딸려들어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무분별한 장갑 착용(기계-특히 날이 회전하는 기계톱, 기계 대패 사용시) 
: 역시나 회전하는 날물에 장갑이 딸려들어가면 제때 손을 뺄 수 없다. 


슬리퍼, 샌들 착용
: 부재나 공구가 떨어지면 발을 다칠 수 있다.  


  내가 운영하는 공방에는 위의 기본적인 사항 외에도 두 가지 금지사항이 더 있다. 


기분이 안 좋거나 피곤할 땐 작업 금지

댄스 금지


  얼핏 게으르거나 우스워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두가지 모두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안전에 관련된 사항이다. 

  몸과 머리를 써서 하는 일인 만큼 피곤 할 때에는 실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부재를 잘못 자르거나 잘못된 위치에 구멍을 뚫는 등, 시간과 경제적 손실로 무마할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눈이 가물거릴 정도로 피곤하거나 정신이 없을 때에는 평소보다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얼른 작업을 끝내버리고 싶어서 손을 대충 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회원님의 도마가 될 나무를 자르던 어느 수업 시간, 나는 무언가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그 작업을 하는 것이 몹시 짜증이 났다. 귀찮으니 얼른 잘라버리자고 생각하는 바람에 나무를 옮길 때 끼고 있던 장갑을 벗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평소보다 대충 놓은 손은 톱날에 너무 가까웠고, 나는 내 손보다 조금 큰 장갑과 톱날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보지 못할 정도로 눈깜짝할 사이에 왼손 검지와 중지를 크게 다쳤다. 피가 줄줄 흐르는, 프라이팬 위에서 등이 터져버린 비엔나 소시지처럼 변한 손가락을 휴지로 둘둘 말고는 응급실로 달려갔더랬다.  

  수술 후 2주간 입원하고, 퇴원해서도 한달은 깁스를 하고 있었다. 들어온 주문도 취소하고 공방을 닫아둘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 결혼식 때 깁스한 손가락으로 행진하다가 드레스를 놓쳐 애꿎은 드레스 자락을 찢어먹고 눈물 젖은 수선비를 물어주어야 하기도 했다. 

  그 부상 이후로 생긴 나만의 신조 같은 것이 두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안 다치는 목수가 최고의 목수'이고 두 번째가 '기분이 안 좋을 땐 작업 금지'이다. 


  손가락을 다치고 나서 공방에 복귀하기 전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용하던 기계 톱을 '쏘스탑' 기능이 있는 톱으로 교체한 것이다. 쏘스탑은 작동 중 날에 전류가 흐르는 물체가 닿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고 날을 기계 몸체 속으로 숨겨버린다. 젖은 목재를 자르거나 쇠로 된 무언가를 자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건조목을 주로 사용하는 목수들에게는 손가락의 안전을 지켜주는 고마운 아이템이다. 

  쏘스탑 기능이 있는 톱은 전류가 흐르는 물체가 닿았을 때 톱날이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본체에 장착된 카트리지를 터뜨리고, 카트리지는 톱날을 꽉 물고 놔주지 않는다. 그래서 쏘스탑 기능이 작동된 후에는 톱날과 카트리지를 모두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나는 카트리지를 세 번정도 교체했다. 두 번의 수술비가 쏘스탑 기계 가격과 비슷하니 확실히 본전은 뽑았다고 할 수 있겠다. 

  기분이 안 좋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너무 좋을 때, 특히 너무 신이 났을때 작업하는 것도 소중한 신체 보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번 중 두번의 사고는 모두 흥이 차올랐을 때 일어났다. 

  첫 번째는 스승님의 공방에 놀러가는 날이었다. 스승님의 공방에서 놀면서 간단한 작업이나 하려고 밑준비로 재단을 하고 있는데, 놀러간다는 생각에 들뜬 나머지 동작이 커졌는지 손이 톱날에 닿아 버렸다. 톱은 바로 떨어져서 상처는 종이에 베인 정도였다. 쏘스탑 기능이 있는 기계톱 구입 이후, 몹시 조심스럽게 작업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예비 톱날과 카트리지를 구비해두지 않았다. 덕분에 작업도 일시 정지. 스승님의 공방에는 놀러 가려고 했는데, 그날 꼭 해야 하는 재단을 하러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그냥 보통 날들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거나 신이 나면 혼자서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춤이라기 보다는 몸을 흔들어대는 수준이지만- 그날도 노래도 흥겹고 해서 공방 문을 꼭꼭 닫아놓고 스텝을 밟고 있었더랬다. 슬슬 다시 일하자고 생각하고 아직 흥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고개를 까딱거리며 재단을 하다가 또 카트리지를 터뜨려버렸다. 이런 일이 두 번정도 반복되고 나니 공방에서는 춤을 출 정도로 흥을 끌어올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방에는 어머니께서 손수 그려 만들어주신 '댄스 금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춤을 추려고 하다가도 그 포스터를 보며 차오르는 흥을 안전한 작업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내리곤 한다. 


  앞으로 더는 새로운 금지사항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모두의 안전한 하루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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