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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y 03. 2022

나무 냄새 나는 사람

목공단상 2

 나는 향기로운 것들을 좋아한다. 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향기때문에 좋아하고, 고르고 고른 향수와 핸드크림도 여럿 두고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사용한다. 내 일상을 둘러싼 많은 것들 중, 일부러 향이 나도록 만든 것이 아님에도 특별한 향을 가진 것을 꼽자면 보송한 고양이 털과 목재가 있겠다.  


 공방에 처음 방문한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음, 나무 냄새!'이다. 손님을 맞기 직전에 캄포로 작업을 했다면 모를까(캄포에서는 강한 민트 향 같은 것이 난다. 창업 초기에는 공방에서 나무 냄새가 났으면 해서 일부러 손님이 오는 시간에 맞춰 남은 캄포 조각을 자르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문서작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말을 들을 땐 매번 의아하다. 거의 매일 작업을 하는 나는 주말에 푹 쉬고 주 첫날에 공방에 들어설 때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익숙한 냄새인데, 일상에서 마감되지 않은 목재를 접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나무가 후각으로 가장 먼저 다가오는 모양이다. 

 

 나무는 수종마다 냄새가 다양하고 향의 강도도 각기 다르다. 목재 편식을 하는 나이기에 많은 수종을 다뤄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맡아본 나무 냄새들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선호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캄포
위에 적었듯이 싸한 민트향 같은 것이 강하게 나는데, 흔히 생각하는 편백나무 향과도 비슷하다고 본다. 
식재료를 썰거나 음식을 플레이팅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향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캄포로 만든 플레이팅 도마 위에 따뜻한 빵을 올리면 빵에서 캄포 향이 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오래 작업하면 코가 아프다. 

소나무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송진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맡다 보면 취할 것 같지만, 가끔 맡으면 기분이 좋다. 

레드오크
슬프게도 구린내가 나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작업할 때 냄새 때문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다. 

월넛
고소한 군고구마나 너트류의 냄새가 난다. 향이 그닥 강하지 않고, 무언가 헛헛한 향이다. 

고무나무 집성목
땀냄새가 난다. 고무나무를 처음 쓸 때는 내 몸에서 냄새가 나나 했는데, 막 출근해서 작업할 때도 똑같은 땀냄새를 맡고 확신했다. 레드오크만큼 충격적이다. 

일반합판, 자작나무합판 등 합판류
합판 특유의 부스러기 같은 냄새가 난다. 인테리어 현장의 그것이다. 포름알데히드 방출량과는 관계 없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환경등급이 낮은 합판으로 작업할 때는 코와 눈이 아프다. 

화이트오크
고소하고 너티한 향과 흙냄새 같은 것이 강하게 난다. 묵직하다. 작업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 냄새를 다른 이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자주 손이 간다. 


 '나무 냄새'는 가끔 공방 밖까지 나를 따라온다. 하루종일 나무를 자르고 나무에 구멍을 뚫다 보면 카레를 먹은 날 그러하듯 손끝이나 머리카락에 그 냄새가 밴다. 고무나무, 캄포, 화이트오크처럼 향이 강한 나무일 경우에는 씻고 나와도 냄새가 코끝에 걸려 있다. 남편에게 '머리카락에서 나무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물으면 남편은 대부분의 경우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 몇십년간 향초 도매업을 하신 외할아버지의 몸에서는 향초냄새가 난다. 은은한 아로마와 왁스 향이 섞인 그 냄새는 어릴 때부터 '외가의 냄새'로 각인되어 있다. '공방에서 나무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도 십몇년 후에는 몸에서 은은하게 나무 냄새가, 특히 화이트오크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라게 된다. 남편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먼저 알아차리고, 우디한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언급하는 그런 향이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방에서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여도 공방이 폭발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려서 줄창 인센스를 태워대는 바람에 나무 냄새보다는 향내 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작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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