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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r 11. 2022

목수는 게으르다

목공단상 1

 '목수는 게으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목수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물론 그렇지 않을 것임을 안다- 목수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성질이 급함에도 꽤나 게으른 편이므로 굉장히 공감가는 말이다.  

 나는 소목(小木)을 한다. 목공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되는데, 집을 짓는 것은 대목이고 가구 따위를 만드는 것은 소목이다. 혼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한 무리의 대장이라는 점에서 염치 없지만 '소목장'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다.


 모든 일에는 대기시간과 실행시간이 번갈아 있겠으나 목공은 기다림이 긴 일이다. 뚝딱뚝딱 하면 짠 하고 완성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간단하게 집성목 판재*를 나사로 체결한다고 해도 판재를 재단하고, 샌딩하고, 나사 자리를 표시하고, 구멍을 뚫고, 나사못을 박고, 원한다면 나사 자국을 가리기 위해 구멍에 목심을 박고 톱질하는 일까지 그 과정이 다난하다. 이 과정이 단 몇 시간 안에 끝난다고 해도, 아직 마감 작업이 남아있다. 조립한 작품에(나는 작품보다는 제품을 만들자는 주의지만, 작품이라 칭하겠다.) 오일을 칠하든 바니쉬를 칠하든, 그게 다 마를 때까지는 짧게는 8시간에서 길게는 만 하루가 필요하다. 마감은 보통 2회 이상 도장하니 이틀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재목**을 사용하고 짜맞춤이나 유사 짜맞춤(도미노 기계 사용 등)을 하는 경우에는 기다림이 더 많다. 오일 마감 이전에 본드 굳히기라는 큰 산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각 부재를 조립할 때는 부재가 연결되는 부분에 목공용 본드를 바르고 부재 사이가 뜨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 다음 발라둔 본드가 굳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만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업 중 조립이 분해될 수도 있다.

 이렇게 기다림에만 이틀에서 삼일, 작업 순서에 따라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 억지로라도 느긋해져야만 하겠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라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가 난다. 급하게 일하거나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면 실수가 잦아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목공에는 안타깝게도 control+z가 적용되지 않는다. 한번 잘려나간 목재는 다시 붙일 수 없고(다시 붙여 쓸 수도 있긴 하지만 톱날 두께 때문에 사이즈에 오차가 생기거나 실수한 티가 나서 아름답지 못하다.) 한번 깎인 모서리는 다시 부풀어오를 수 없다. 목공에서의 실수란 이처럼 작업을 비효율적으로 반복하게 되거나 아까운 목재를 버리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수나 성급함이 몸의 안전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자동대패에 손을 밀어넣게 되거나, 전동 톱을 사용하는 동안 손가락이 제대로 접혔는지 확인하는 것을 잊거나, 각종 가이드가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을 생략하면 이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봄, 수업 중 귀찮은 마음에 '얼른 잘라버리자'고 생각하며 전동 톱으로 목재를 자르다가 손가락도 같이 잘라버린 적이 있다. 덕분에 한동안 입원해서 벌 수 있었던 수입을 놓쳤을뿐 아니라 결혼식에 깁스를 하고 입장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작업을 느긋하게,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느긋함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번이고 일부러 되새겨야 하지만, 작업이 너무 하기 싫어질 때면 미련없이 손을 놓는다. 피곤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불안할 때도 마찬가지다. 안전하지 못할 뿐더러, 억지로 대충 만든 것은 결과물에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성공적이고 만족스러운 작업을 위하여 성급한 성격으로 인한 개인적인 답답함은 점차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오늘이다.


 




*집성목 판재: 목재 조각을 여러개 붙여(=집성) 하나의 큰 판으로 만든 것. 보통 일정한 두께와 크기로 가공되어 판매된다.

**제재목: 원목(베어낸 통나무)에서 각재나 널빤지 형태로 잘라낸 목재. 널빤지로 제재된 경우 표면이 고르지 못하므로 원하는 두께가 될 때까지 대패를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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