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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Aug 05. 2022

머리칼

몰래 적는 사랑고백 6

  자기 전 함께 누워있는 시간이나 서로를 품에 안고 있는 때에 앨런은 자주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지도 않고, 힘을 주어 꾹꾹 누르지도 않는, 손의 무게 때문에 방방하게 떠오른 반곱슬 머리가 주저앉을 정도로만 너무 가볍지도 그리고 무겁지도 않게. 


  앨런과 나는 결혼하기 전 7년간 대학 선후배이자 편한 친구 사이로 지냈다. 앨런은 내 이십대의 모든 연애를 멀찍이서 바라봤고, 나도 앨런의 새로운 연애 시작을 축하거나 소개팅을 응원하곤 했다. 대학 선후배였기 때문에 서로의 연애 상대를 알고 있거나 마주치는 경우도 몇 번인가 있었다. 그 모든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성애의 대상이 아니었고, 그래서 결혼하게 된 후에도 과거에 상대방에게 머물렀다 간 인연이나 그 흔적을 알고 있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별 것 아닌 밤이었다. 평소처럼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떠는 보통 날. 앨런이 특별할 것도 없이 나를 품에 넣고 머리칼을 쓰다듬는데, 문득 그의 과거의 연인들에게 크게 질투가 일었다. 

  그 언니의 머리도 이렇게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었겠지.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네가 내게 너무 소중하다고 손바닥을 통해 이야기했겠지. 그들도 이렇게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그럼에도 너와 헤어졌겠지. 이 시간, 이 느낌, 이 온도, 이 무게는 너와 헤어질 일 없는 나만의 것이어야 했다. 다른 이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졌다는 게, 나보다 먼저,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애정을 담은 손짓을 느꼈을 수도 있다는 게 아주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전 여친들도 이렇게 쓰다듬어 줬어?

  앨런은 거짓말을 몹시 싫어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단호해서, 즉각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은 네 버릇 같은 것이므로 아니라는 대답은 거짓일 것이다. 나는 질투가 나. 앨런은 내가 질투하게 만든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겠다고 말했다. 과장된 대응에 웃다가 곧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갔지만, 나는 잠들 때까지 이제는 가물가물한 그녀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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