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생각

거미줄과 김새론

by JHS

부처가 극락의 연못을 거닐고 있었다. 연못 아래는 지옥과 닿아 있어 죄인들이 고통받는 모습이 보였다. 연민의 눈길로 지옥을 내려다보던 부처의 눈에 칸다타라는 죄인이 들었다. 칸다타는 살아 있을 때 이익을 위해 남에게 온갖 해를 끼치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 많은 악행을 저지른 칸다타였지만, 딱 한 번 발 밑의 거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선행을 한 적이 있었다. 부처는 그 일을 떠올리고는 보답으로 칸다타에게 거미줄을 한 가닥 내려주었다. 칸다타는 거미줄을 잡고 지옥을 기어올랐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다른 죄인들도 그의 거미줄에 매달려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거미줄이 끊어질까 겁을 먹은 칸다타는 이 줄은 자기것이라며 다른 이들을 밀치고 발길질 했다. 그러던 와중에 결국 줄은 끊어졌고, 칸다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처는 슬픈 표정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거미줄의 줄거리다. 초등학생이었던 십수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분량이 짧고 마음에 남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떠올릴 때 부처의 표정을 상상한다. 지옥의 죄인들에게도 연민을 느껴 기회를 내려주지만, 정작 죄인이 기회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는 부처는 어떤 얼굴을 했을지. 그리고 죄인들의 얼굴도 상상한다. 그런 부처의 얼굴을 죄인들이 볼 수 있다면 어떤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낄지.


며칠 전 배우 김새론씨의 사망 기사를 읽고 이 책이 떠올랐다. 그녀를 조롱하는 수 천건의 기사와, 헤아릴 수 없는 악플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연못 아래의 지옥도가 눈에 그려진다. 물론 책의 상황과는 달랐다. 칸다타는 자신의 욕심으로 구원을 저버렸다. 그는 이기심으로 추락했지만, 김새론 씨는 사회적 조롱과 냉대에 무너졌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칸다타가 자신의 손으로 거미줄을 끊었다면 김새론 씨의 거미줄은 죄인들에게 끊겼다고 보는게 타당하겠다. 거미줄이 끊어진 것은 같지만, 누가 끊었는지가 그 차이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죄인들은 괴롭다. 괴로운 환경에서 긍정적인 마음이 들기는 어렵다. 자신이 고통스러운데 남에게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고통으로부터 어떻게든 빠져나오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의 과오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집단적 스트레스 해소의 방식이다. 지옥의 죄인들이 살아남으려고 거미줄을 붙잡는 본능적 몸부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미줄을 내려받은 칸다타처럼, 잘못을 저지른 유명인의 재기하려는 노력을 보며 "왜 저 자는 기회를 받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달려들어 끌어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새론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련의 과정은 소설 속 지옥도와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부림치는 죄인들이 여기저기 손을 뻗는 모습을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부처의 표정을 상상해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탈한 이는 수렁 속에서 서로를 고문하는 죄인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열반에 든 지 오래인 부처가 이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을테니 다른 예시를 들어 본다. 우주에 우리보다 앞선 문명이 있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카인과 아벨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지켜본 관찰자가 있다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까. 스마트폰을 든 원숭이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아직 우리가 사는 곳을 문명사회라고, 우리를 문명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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