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어이가 없네"

베테랑(2015) - 류승완

by SBOOI

서울 강남의 화려한 고층 빌딩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빼곡한 증거를 내밀며 조태오(유아인)를 압박한다. 하지만 재벌 3세답게 그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기사님... 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 그래요.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될 일을 못하니깐...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원래 '어이'가 아니라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를 뜻하지만, 유아인의 완벽한 연기와 함께 '어이'로 쓰였다. 이 오류는 감독 류승완이 일부러 의도한 것으로, 권력층의 무지함을 풍자하기 위해 설정했다고 한다.


맷돌 손잡이를 뜻하는 ‘어이’ 하나 빠진 사소한 이유로 일이 꼬인 현실에 대한 냉소 그리고 “법과 정의조차 내 편이 되지 않는다”는 조태오의 당당한 선언은, 권력과 특권이 허용하는 부조리의 민낯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류승완 감독은 이 장면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본을 최소화했다. “조태오의 오만을 한 줄에 담아 달라”는 지시 아래, 유아인은 톤과 표정으로 기승전결을 완벽히 그려냈다.

후반부의 카체이싱 비하인드도 화제를 모았다. 200km/h 가까이 급가속하는 머스탱 두 대를 유아인이 직접 운전하며 좁은 골목과 빗속을 누비는 장면들은 스크린에 압도적 리얼리티를 심어 주었다. 광기 어린 조태오의 광적인 자신감은 실제 고속주행의 긴장감 위에서 더욱 빛났다.


유아인

흥미롭게도, 이 명대사는 개봉 8년 뒤 현실과 교차점을 맞았다. 2023년, 유아인은 프로포폴·대마 등 상습 투약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가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되어 5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온라인에서는 “영화 속 조태오도 어이가 없었겠지만 현실 속 유아인이 일으킨 이 사건은 더 어이없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1990년대 마약·무기 소지 혐의로 잇따라 체포되었지만, 집행유예와 재활 프로그램을 거쳐 2008년 <아이언맨>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담담히 인정하고, 재활 과정을 공개하며 대중의 지지를 되찾았다.


유아인 역시 지금 커리어 복귀의 갈림길에 섰다. 한때 권력자의 냉소를 연기하던 그가, 이제 진짜 삶에서 복귀 스토리를 써 내려갈 차례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화려한 재기를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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