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날 추앙해요"

나의 해방일지(2022) - 김석윤

by SBOOI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화 후반, 구씨가 지내고 있는 집 앞 평상. 어둠이 가득한 공간 속, 염미정(김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구씨(손석구)를 붙잡아 세운다. 촛불 같은 눈빛의 떨림이 스친 뒤, 그녀는 낮고 단단하게 말한다. 이 사건 이후 극은 두 주인공의 관계를 종래의 수동적 관계에서 능동적인 구도로 전환시키며, 그다음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시킨다.


왜 매일 술 마셔요?

아니면 뭐해?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깐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해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깐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깨끗한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 이 한마디는, 반복되는 일상에 깃든 끝없는 공허와 고립이 부른 절규다. 염미정은 전 연인의 빚독촉에, 가족과 직장에서의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지겹도록 평범한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사랑이 아닌 절대적인 지지와 무조건적 존중—즉 '추앙'을 갈망하게 만든다.


'추앙'은 일상에선 잘 쓰이지 않는 단어다. 드라마 속 '추앙'이란 말은 절대 긍정, 무조건적 응원이라고 정의하며, 미정에겐 사랑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지의 형식이 필요했음을 고민했다고 작가는 밝혔다.


김석윤 감독은 카메라를 미정의 눈가 가까이 들이대어, 작은 떨림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가로등에서 떨어지는 따뜻한 빛과 대비되는 어둠. 말미에 잠시 머무른 침묵은 미정의 고독을 더욱 선명히 비춘다. 촬영 당시 제작진은 "미정의 내면이 폭발하는 핵심 장면"이라며 조명·편집·음향을 정교히 조율했다고 전한다.


해영 작가의 앞선 작품 <나의 아저씨>에서도 감정의 근원을 탐구했던 것처럼, 이번 <나의 해방일지> 역시 일상에서 고립된 사람들의 상처와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역은 없다.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에 이르기까지, 박해영 작가는 내성적이고 의욕 없지만 마음속 깊이 상처를 간직한 인물을 반복적으로 그린다. 특별하지 않은 우리 자신 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깊이 품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공허와 외로움의 치유가 악역이 없더라도 충만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언제가 모두, 작은 해방을 맛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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