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2018) - 김원석
갑작스럽게 찾아온 동훈을 발견한 지안은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말을 한다. 그런데 동훈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연한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한다.
고맙다, 고마워
그지 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고마워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해야겠다.
너, 나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는 꼴 못 보겠고 난 그런 너, 불쌍해서 못 살겠다.
너처럼 어린애가 어떻게… 어떻게… 나 같은 어른이 불쌍해서… 나 그거, 마음 아파서 못 살겠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꼴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 거고.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
어, 행복할게.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이 무조건적인 이해와 위로를 통해 삶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과정. 동훈은 자신의 굴욕과 상처를 "다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이는 그의 삶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선언이다. 동시에 지안처럼 상처 입은 영혼에게 건네는 무조건적인 위로이기도 했다. 서로의 존재가 되어 준 두 사람은 비로소 삶의 무게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어 일상 속 해방과 구원을 맛본다. 작가는 이 아저씨와 어린 여자의 특별한 우정을 통해, 가장 고단한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연대가 남아 있다면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결말에서 동훈과 지안은 각자의 자리에서 편안함을 얻는다. 모든 폭풍이 지나간 뒤, 동훈은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담담한 평온을 되찾고 지안은 할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죗값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새 삶을 시작한다.
이지안(至安)이라는 이름 그대로, 지안은 마침내 편안함에 이르렀고 동훈 또한 자신의 삶에서 조용한 행복을 찾은 듯 보인다. 서로를 구원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이제는 멀리서도 괜찮을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보내는 편안한 미소였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다른 아이러니를 남겼다. 극 중에서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라고 힘주어 말하던 배우 이선균은 2023년 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연기했던 박동훈이라는 인물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넸던 그가, 현실에서는 감당 못할 절망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었다. "다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그의 극 중 위로는 배우의 비보 앞에서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드라마 속 박동훈은 주변의 무조건적인 지지로 존엄과 행복을 되찾았지만, 현실의 이선균에게는 그러한 위로가 끝내 닿지 못한 것일까.
이선균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의 인간됨을 추억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 중 고인의 이름을 떠올리며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누가 뭐라고 해도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배우였고"라는 찬사를 남겼다. 박호산은 SNS에 "동훈아, 네가 뭘 했든 우리는 정말로 널 믿어"라는 눈물 어린 작별 인사를 전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삶은 때로 우리에게 감당 못 할 비극을 쥐여주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들이 있다. 극 중에서 서로에게 건넸던 “괜찮다”는 신호와 따스한 악수는 현실의 우리의 가슴속에도 잔잔한 파문을 남겼다.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주며, 우리 또한 누군가의 '아저씨'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