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2 "리산 알 가입"

듄2(2024) - 드니 빌뇌브

by SBOOI

사막 행성 아라키스의 밤,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가 프레멘 앞에 선다. 그들이 환호하는 단어

“리산 알 가입”
“바깥 세계의 목소리”

이 말은 프레멘이 “물을 가져다줄 메시아”를 기다리며 붙인 이름이다. 프랭크 허버트 원작에서 제국의 비밀 조직 베네 게세리트는 프레멘에게 메시아 전설을 주입했다. 폴은 그 믿음 속에서 태어난 메시아이지만, 그 신화는 사실 권력 집단의 문화적 조작이었다.


“리산 알 가입”은 메시아의 언어로, 척박한 사막에서 물을 상징한다. 프레멘은 외부 구원자가 자유와 생명을 가져다줄 거라 믿어왔다. 영화에서 프레멘 영도자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는 “리산 알 가입!”을 외치며 폴을 맞이하지만, 빌뇌브 감독은 이 인물이 보여주는 맹목적 숭배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스틸가는 매번 영웅이 온다고 믿었지만, 결국 민중의 예언이 폭력적인 성전으로 이어질 불씨가 된다는 점에서 비극적 인물이다.


폴의 연설을 앞둔 사다우카 군단 역시 언어와 의식으로 그 위력을 드러낸다. 사다우카의 종교의식은 영화만을 위한 인공 언어(데이비드 J. 피터슨 자문)로 구현되었다. 이 언어는 “무섭고 의식적”인 느낌을 주며, 저음 드론처럼 울려 퍼지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황제에 굴복한 제국의 엘리트 병사들은 “황제의 칼날” 같은 신조어를 외치며 잔혹함을 의식화한다. 이는 제국 권력의 폭압성을 강렬하게 상징한다.

(ex: We are Sardaukar → Are Sardaukar → Ah Saduka)


밤사막, 수천 명의 프레멘이 지하 씨치에 모인다. 빌뇌브 감독은 이 장면을 종교적 은유로 연출했다. 폴이 모래 언덕 위로 걸어 나갈 때, 군중은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내준다. 그러나 울려 퍼지는 한스 짐머의 ‘Southern Messiah’는 밝은 찬송가가 아닌 음산한 합창이다. 이는 승리의 행진곡이 아닌, 위험한 서사의 서막임을 경고한다.


마디

저희에게 무엇을 보여주실 겁니까?

푸른 낙원

부디 저희를 이끄소서

이건 내 아버지의 반지다.

나는 폴 무앗딥 아트레이데스, 아라키스의 공장이며

신의 행하심이 곧 나의 증인이고

나는 외계에서 온 목소리로다.

내가 너희를

푸른 낙원으로 인도하리라.


“물을 되찾고 자유를 줄 것”이라는 그의 약속은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그러나 광야의 함성 뒤에는 폭주를 부르는 열광의 위험이 숨어 있다. 모두가 “리산 알 가입!”을 외치며 환희에 젖을 때, 챠니(젠데이아)만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우리의 다음 압제자는 과연 누구인가”를 묻는 유일한 목소리였다. 사랑하던 이가 메시아 신화에 기대 폭력을 선택한 장면은, 민중의 맹목적 충성이 불러온 비극을 상징한다.


폴은 프레멘의 절박한 요구(물과 자유)를 명확히 제시하며 민중의 불만과 염원을 읽어낸다. 이 연설 장면은 대한민국 대선 시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 선거철이면 광장에 몰린 인파, 지도자를 향해 터져 나오는 함성이 모두듄의 프레멘과 다르지 않다. 현실 정치에서도 포퓰리스트는 대중의 불안을 정확히 겨냥해 공감과 환호를 얻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약속 불이행과 권력 남용의 위험이 도사리며 대중은 특정 지도자를 구세주처럼 숭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지도자에게 구원자 같은 역할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지지할 때가 있다. 결국 지도자는 민중의 선택으로 태어난다. 듄에서 프레멘이 폴을 선택했듯, 대한민국의 유권자들도 현명한 선택의 책임을 져야 한다. 듄은 “맹목적 숭배”가 가져올 폭력적 결과를 경고한다. 프랭크 허버트는 원작에서 “영웅의 손아귀에 민중이 떨어지는 것만큼 끔찍한 재앙은 없다”라고 경고했다. 이제 우리는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우리 시대의 리산 알 가입은 누구이며, 우리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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