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깝다. 너무 아깝다.
2025.03.29.
한창 봄인데
날씨도 내 마음도 지윤이의 마음도 봄이 아닌 날이다.
아깝다. 아깝고 너무 아깝다.
지윤이 친구의 부고 소식은
아깝다는 말만 수백 번을 하게 만들었고,
갱년기인가 싶을 만큼 감정기복이 심했다가
아주 작은 알약 하나로 다시 감정이 평온하다 못해
감정 자체가 없어진 것 같은 내 마음이
분무기로 회색 물감을 뿌린 듯 뿌옇게 되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지윤이 친구의 부고에,
나도 지윤이도 "무슨 큰 사고가 났나 보다"라는 말로
절대 그녀가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
스스로 세뇌하듯 반복해서 얘기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밝은 그녀의 성격상
절대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했을 리 없다며
서로를 안심을 시켜주고 있었고,
그래도 우리가 그녀의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는 거라며
혹시나 모를 가능성에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막을 치고 있었다.
3년 동안 큰 반으로 한 번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와 지윤이는
서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인사를 두세 번 정도 했을 정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장례식장은 다녀와야 할 것 같다는 지윤이에게
우리의 조의금을 전달해 줄 것까지 부탁했다.
언젠가는 다시 가 보고 싶다던 대구를
지윤이는 친구의 마지막을 보러 갔다.
지윤이는 큰 슬픔에 빠져있었고
보고 있지 않아도 지윤이의 표정과 목소리가 그대로 그려졌다.
지윤이의 친구는, 우리의 예상을 비웃듯이 뒤집어엎었고
친구의 선택은
지윤이에게 아주 큰, 내 생각보다도 더 큰 슬픔을 던져주었다.
딸을 잃고 세상을 모두 잃어버린 듯 한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는 울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지윤이는
내게 전화를 해서
마음속을 조금씩 비워내듯 울기 시작했다.
내 아들의 울음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듯했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친구의 죽음이라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거냐며 너무 아깝고 마음이 아파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무리를 해서라도 발인까지 보고 가야 할 것 같다며 또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숙소에는 다음 예약자가 없어서 하루를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겐 늘 7살 아이 같기만 했던 지윤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내 마음에서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윤이의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 천둥 같은 울음소리를 들어내고 있었고
내 마음은, 내 세상은 그 천둥소리로 가득 찼다.
자식을 잃고 세상을 잃은 부모도 있는데
나는 내 아들의 슬픔에 더 마음이 쓰인다.
친구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지 잘 알지만
내 자식은 그 슬픔의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 슬픔의 바다가 내 아들을 집어삼키지 않을까
내 아들이 그 슬픔의 바다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까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참 비겁하다.
솔직함이라는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단어로 포장해 보지만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나쁘다.
지윤이에게는 마음껏 슬퍼하고 울고 싶은 만큼 울어내라고 말하면서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지윤이는 조금만 슬퍼했으면 했다.
딸을 잃어 세상 모두를 잃어버린 듯 한 아들 친구의 엄마의 마음보다
내 아들의 슬픈 마음에 더 마음이 쓰이는 나는 참 비겁한 사람이다.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고
그 슬픔에 너무 빠져들지 말고
조금만 슬퍼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21기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먼 길을 떠났다.
지윤이 친구의 엄마는
딸을 멀리 보냈지만
40명에 가까운 아들과 딸이 지켜줄 것이다.
마음이 곱고
고마운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