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과의 상봉, Étang-Salé
N의 부모님과 처음으로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차에 탔다. 분명 친구들이 나보고 상견례 프리패스 상이라고 했는데, 전애인이나 내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보통 나를 좋아해 주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차 뒷좌석에 앉아서 공항으로 가는 동안 도저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차 안에 흐르는 재즈 음악 때문인지 내가 뒷좌석에 있어서인지 말소리가 더 작게 들리고 최대한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대화해야 했다. 프랑스어 듣기 평가인 줄. 한국어로 대화한다고 해도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실제로 만나는 건, 그것도 남자친구 없이 만나는 건 떨리는 일이긴 하잖아.
첫째 누나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 가족 단위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잠을 한숨도 못 자서 도착한 날 밤에 10시간을 넘게 자고.. 그 후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구직 인터뷰처럼 나에게 학교는 어디, 일은 어디서, 체류증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등 이야기를 질문을 대충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문자나 전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니까 긴장되긴 하더라.
N의 부모님과는 자주 문자를 나눴다. 가족 단톡에서도 그렇고, N의 어머니와는 특히 더 자주 연락했었다. 레위니옹에서는 인터넷에서 뭘 주문해도 배송이 되지 않거나 배송비가 물건 가격보다 몇 배이상 비싸다. 그렇다 보니 레위니옹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은 인터넷으로 구매를 하셔서 우리 집으로 배송을 시키고, 내가 중앙물류창고가 되어 다시 레위니옹으로 우체국 택배로 배송해드리거나 첫째 누나 V가 일 때문에 파리로 올 때 전해드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택배를 보냈으니 받아 달라고 연락을 하셨다. 이번에는 주문하신 것들을 내가 직접 배달했다.
Saint-Denis(생 드니)에 위치한 공항으로 달려갔다. 레위니옹 섬에서 제일 큰 도시다 보니 교통체증이 장난 아니었다. 출발할 때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 드니 시에 진입해서 공항까지 40분 이상이 걸렸다. 공항에 다 와갈 때쯤 멀리 공항으로 착륙하고 있는 비행기 한 대가 보였고 N이 타고 있는 비행기였다. 드디어 곧 만난다고 생각하니 신나기도 하고, 부모님과 함께 있는 N이 상상이 안 가서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늘 우리 둘만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가족들이 함께라니. 한국에 간다면 나와 내 부모님을 보는 N도 이런 기분을 느끼려나.
공항에 도착해서 조금 있으니 멀리서 나오는 내 소울 메이트가 보였다. 사실 어머니와 눈물의 상봉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나와 N은 그래도 2-3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니까 괜찮은데 N은 가족들을 2년 만에 만나는 거라 감동의 재회를 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포옹 한 번 하고 끝났다. 극 T 가족들이 틀림없다.
우리 외할머니도 항상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마래이 하면서 비밀이야기라고 해주시긴 하는데 결국에 어떻게 된 일인지 금세 퍼져서는 손주들까지 알게 돼서 모두가 아는 비밀이 되어버리곤 한다. 가족들 사이에서 어쨌든 누군가가 알고 있는 비밀은 지켜지기가 힘든 가 보다. 특히나 N의 가족처럼 대가족인 경우에는 더더욱. 하지만 이번에 나와 N이 레위니옹에 온 것은 둘째 누나를 만나는 날까지 무조건 비밀에 부쳐져야 했다. 둘째 누나 결혼식 겸 생일 겸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거니까. 첫째 누나와 N의 부모님만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첫째 누나는 심지어 본인의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누나 E가 N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N은 거짓말을 하느라 진땀 뺐단다. 안 그래도 연기를 잘 못하는데 전화로 누나가 너희가 못 온대서 슬프지만 이해한다고 할 때마다 어 진짜 너무 미안하고 슬프다고 로봇처럼 대답했다고. 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프랑스 본토에 사는 N의 친척들과 꽤 친하게 지내고 자주 대화를 하는 편이다. 친척들과 이야기하며 레위니옹에 언제 가고, 얼마나 신나는지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입을 다무느라 힘들었다. 심지어 친척 중 한 명이 나와 같은 날 비슷한 시간 비행기라고 하길래 공항에서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출발 공항이 달라서 마주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N이 레위니옹에 도착한 날 저녁에 바로 깜짝 선물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날 서프라이즈 하는 게 최고의 결혼 선물이었긴 하겠다만 N이 3주도 안 있다가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 한 주나 남은 결혼식 날까지는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부모님 댁은 Etang-Salé (에땅 살레)라는 지역에 있다. Etang은 연못, Salé는 짜다는 뜻인데, 과거에 바다로부터 만들어진 연못이 있었어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말라버려서 없다고. 레위니옹 섬 서쪽에 파도가 높아서 서핑을 하기에 좋은 바닷가부터 높은 산까지 이어지는 꽤나 넓은 지역이고, 부모님 댁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멀리 바다도, 다른 도시들도 다 보였다. 막힌 게 없이 뻥 뚫려 있어서 해 질 녘에 매일 절경을 볼 수 있었다. 5성급 호텔을 가지 않아도 파노라믹 뷰 수영장이 집에 있었다. 매일 수영장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삶이라니.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근황토크를 하면서 둘째 누나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크는지, N은 매번 영상통화를 하면서 봐 왔던 조카들이지만 2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자라서 놀라워했다. 2년 전에 한 조카는 유치가 많이 빠져서 이빨이 없다고 놀렸는데 이제 빠진 이빨 없이 다 촘촘히 새로 났고, 동화만 읽던 조카는 이제 해리포터를 읽는다.
곧이어 둘째 누나네 가족이 도착했다. 나와 N은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다가 우리도 결혼식에 초대된 거 맞냐고 물으면서 차례로 등장했다. 둘째 누나는 우리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서프라이즈 대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