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틸의 유년시절
피터 틸은 1967년 독일에서 태어나 한살이 됐을 무렵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린 나이에 피터 틸은 단순한 질문에서 인생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에게 소가죽 카펫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 소가죽 카펫은 뭐로 만든 거예요?”
“소로 만들었단다 “
피터틸은 질문을 이어갔다.
“소는 어떻게 됐어요?”
“죽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질문을 이어갔고 그런 틸의 아버지는 동물과 인간이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 그의 어릴적 경험은 그의 인생관에 영향을 주었다. 그로 인해 식단과 건강을 엄격하게 관리하게 됐으며 현재는 생명공학 회사에 투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지역 회사를 관리하는 화학 엔지니어였기에 자주 이사해야 했다. 틸이 여섯 살이 되었을 쯤에 석유파동이 전 세계를 휩쓸며 미국은 원자력 에너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빠의 직장 때문에 그의 가족은 남서아프리카로 이주했다.
그는 일찍이 명석한 두뇌를 드러냈다. 어린 시절 체스 두기를 좋아하며 지도와 자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자랐다. 어느 날 세계의 모든 나라의 이름을 외운 뒤 지도를 보지 않고 세계지도를 그릴 줄 알았다. 패배를 싫어하는 그는 체스 대회에 출전해 전국 7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강한 승리의 대한 욕구와 강박은 학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성향 탓에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모든 대학의 갈 수 있는 성적을 얻었다. 그의 강한 승리에 대한 욕구는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얘기한다.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저는 경쟁에서 이기는데만 몰두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 밖의 능력을 성장시키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내성적인 측면과 외향적인 측면을 모두 지닌 그는 밖에 나가서 노는 것도 좋아했다. 혼자 강바닥에서 모험하며 몇 시간씩 놀았다. 또한 다른 천재들과 비슷하게 공상과학 소설과 게임에도 흠뻑 빠졌었다. 톨킨의『반지의 제왕』은 열 번도 넘게 읽었다. 훗날 투자 회사의 이름을 소설의 인물 이름인 '발라(Valar)'를 '벤처스(Ventures)'와 결합해 '발라벤처스(Valar Ventures)'라고 이름을 짓는다. 뿐만 아니라 톨키의 철학적 모티브인 '집단 세력에 맞서 싸우는 개인의 가치'와 같은 것에 영향을 받았다. 공상과학 소설, 게임, 체스와 같은 취미는 1970년대 뛰어난 기업가의 유년 시절의 흔히 보이는 특징이었다.
처음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 그의 부모님은 그를 교칙이 매우 엄격한 학교로 보냈다. 단어 철자를 틀리때마다 맞아야 했던 학교 환경이었다.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성격은 그런 환경에 강한 반발을 일을 켰고 지금까지도 획일성과 규제를 싫어하게 만들었다. 훗날 그는 자유지상주의가 되었다.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사해 자유로운 분위기에 학교로 가게 된다. 그는 어떤 학교로 가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어릴적 정치에도 관심을 보였다. 정치에 관련된 신문을 읽고 정치판에 승자를 판별하는 취미를 갖게 되는 한편 자유지상주의를 강조하는 레이건의 팬이 되기도 했다. 레이건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열심히 스크랩하기도 했다. 그는 훗날 트럼프에게 125만 달러를 기부했다. 세상의 흐름을 읽는 눈이 있었다.
공부를 잘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대학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패배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주의를 배척하는 그는 스탠버드 대학 강의에서 말했다.
"경쟁은 패자가 하는 것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학생들은 외향적이고 자기 생각이라곤 없어 보입니다. 2년씩이나 이런 무리와 어울리면 군중 심리에 말려 잘못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과연 그의 실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1980년대 하버드 졸업생들은 금융없계로 몰려들었다. 1990 후반 닷컴 버블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들은 트렌드를 따라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그러나 거품이 줄어들며 나스닥이 폭락했다. 2005년 부동산 버블이 한창일 때는 사모펀드 회사로 몰려들었으나 곧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은 엘리트 집단 심리에 한 곳에 뒤늦게 몰리는 경향이 있었다.
대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그는 구체적으로 가고 싶은 과가 있지는 않았다. 1980년대에는 장래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낙관주의가 팽배했기에 그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더군다나 좋은 성적을 고등학교 시절 거둔 그는 자기가 어딜 가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생각했고 무엇보다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집에서 가까운 스탠퍼드 대학교의 철학과로 진학했다. 왜 철학과를 선택했을까?
-피터 틸의 대학생과 그 이후의 인생은 더욱 재밌어집니다. 다음편에 계속-
참고한 책: 『피터 틸』(토마스라폴트 지음), 강민경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