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글 쓰는 방식은 다 다르고, 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 경우는 다듬고 또 다듬고도 미련을 못 버리고 몇 년을 붙잡고 있다가 개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맨 처음 그 시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세상에 내놓지 않고 나 혼자 오래 들여다보면서 생긴 버릇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시를 이렇게 쓰는 건 또 아니다. 어떤 시는 몇 번 손 봐서 끝내기도 하고 어떤 시는 그냥 한 번에 써놓고 다시 건드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 번에 써 내려간 시들은 대체로 자고 일어난 직후에 쓴 것들이다. 밤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가 아니라, 예를 들어 병실에서 밤을 홀랑 새우고 아침 녘에 잠깐 불안하고도 혼곤한 가수면 상태에 빠졌을 때.
그럴 때 가끔 누가 불러주는 것처럼 머릿속에 시가 떠오른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시구 정도는 아주 정확히 완성된 형태로 불러준다.
이렇게 쓴 시들은 아무리 다듬고 싶어도 내 능력으로 어찌 건드려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들은 내게도 두고두고 낯설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쓴 글에는 종종 시마(詩魔)가 등장한다. 아무개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기량을 뛰어넘는 기막힌 시들을 줄줄 쏟아냈는데, 그게 시마(詩魔)의 힘이었고 시마가 떠난 뒤에는 다시는 시를 쓰지 못했다는 얘기들이다.
사전에서 시마(詩魔)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시를 지을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이라고 나온다. 어떤 초월적 존재의 힘에 의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시를 쓰게 된다면 그 존재는 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텐데 마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평균을 월등히 상회하는 직관이나 감수성을 마귀의 장난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천재성에 대한 질투도 기저에 깔려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이성의 견제를 받지 않고 지나치게 튀어 오르는 자유로운 감성을 경계하는 유학자의 균형감각이 작용했을 것 같다.
시마(詩魔)는 아마도 인간 무의식일 것이며, 어떤 계기로 무의식이 각성되어 시로 표현된 것을 시마(詩魔)의 개입이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가끔 누가 불러준 것 같은 시를 쓰는 것 역시 무의식의 각성 덕분일지 모른다.
나의 시마(詩魔)는 그다지 힘이 세지 않은지 늘 아주 평범하고 소소한 시구를 불러준다. 쉽게 쓴 시가 평범하고 소소하기까지 하니 처음에는 그냥 버릴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읽으면 내가 쓴 것 같지 않게 낯선 그 시들이 공들여 쓴 시들 보다 훨씬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되곤 한다.
따뜻해서 버리지 못했던 소품들 몇 편을 소개하며, 내 안의 사랑스러운 마귀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