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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십이월 Jul 28. 2022

유독한 생계

조강지시(糟糠之詩)


유독한 생계

조강지시(糟糠之詩)




모든 생계는 유독하다. 아무리 고매한 직업도, 가벼운 아르바이트도 그것이 생계가 되는 순간 독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가 자신에게 유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삶의 방편은 쉽게 바꿀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일상에는 그 독을 풀어줄 해독의 힘을 가진 존재들도 있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할 지혜도 자라나고, 약간의 독을 취향으로 즐길 수 있는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 삶이  견딜만해지는 이유이고, 지나간 시절이 미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이 없어도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이르고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절은 벨 에포크라는데 공감하게 됐다.  그렇다고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시대의 발목을 잡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는 않다. 생계는 그 때나 지금이나 유독하겠지만 민주주의, 인권, 성평등, 다양성 등의 사회적 가치에서 나의 벨 에포크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야만적이었다.  

그 시절이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았던 우리의 젊음이 아름다웠을 뿐이다. 유독한 생계를 견디고 버틸 수 있었던 힘도 절반은 젊음에 있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입원 중이다. 좀 전에 약을 가져온 간호사는 식사시간을 놓쳤다고 했다. 그에게도 유독한 생계인 모양이다. 언제쯤이면 더 이상 생계가 유독하지 않은 시절이 올까?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이 거의 필요 없어질 때 우리는 유독한 생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쓰레기가 되어 폐기 처분될까?


유독한 생계에 바짝 기대 쓴 몇 편의 시를 찾아냈다. 이 매거진을 발행하면서 처음으로 잠깐 울었다. 이 시를 쓸 당시, 아마도 15년쯤 전 나의 생계가 꽤 유독했었나 보다.


 







우울한 날의 커피



여자는 젊어 한 때 춤을 췄단다.  

남자는 젊어 한 때 배를 탔단다.

여자의 추억은 우울하게 춤추고

남자의 바다는 우울 보다 모호해서

그들은 뜨뜻미지근한 커피를 마신다.


우울한 날의 커피는 달다.

품을 팔아 밥을 버는 이들의

끼니와 끼니에는 푸석한 피곤이 박혀

우울한 날의 커피는 음흉한 달콤함으로

그저 그런 한 끼 치의 사연을 녹여 준다.


우울한 날의 커피는 쓰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이들의

오늘과 오늘 사이에는 둔한 길몽이 들러붙어

우울한 날의 커피는 노골적인 씁쓸함으로

추스르지 못한 하루치의 미련을 깨워 놓는다.


우울한 날의 커피는 떫다.

날품을 팔아 할부를 갚는 이들의

사주와 팔자는 흔해빠진 불운에 딱 들어맞아

우울한 날의 커피는 천박한 떨떠름함으로

거치 기간이 끝나버린 절망을 들이민다.


닳고 닳은 매춘부 -

돌팔이 약장수 -

상투적인 사기꾼 -


그리하여

구겨버린 종이컵 속에서

우울한 날의 커피는

향 기 롭 다.







          초조한 날의 담배



맑은 날,

태양은 오늘에 걸려 있다.

흐린 날,

구름은 기억에 걸려 있다.


걸려 있어 위태롭고

걸려 있어 황홀하다.


초조한 날,

운명은 허공에 걸려 있다.


타들어간다.

눈물처럼 맺혀 떨어지는


마지막


차마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연기


독하다

속 타는 냄새









내게는 밥이 필요했을 뿐이야

끼니마다 밥이 그득 채워지는 화수분이 있었다면

나도 너와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거야

너와 함께 어떤 꿈을 꿀 수 있었을지 몰라


나는 밥 한 그릇이 절실한데

너는 밥맛에 대해 고민했지

쌀독이 바닥을 드러내던 날에도

너는 뒤주와 대독의 통기성에 대해 얘기했어.

쌀독 바닥을 긁다가 거기 거꾸로 쳐 박혀도

끝내 죽지는 못 하겠구나

나는 허기로

아니, 허기의 공포로 휘청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밥 한술이 절박한데

너는 밥의 존재와 부재에 대해 말하는 건 진부하다며  

마지막 남은 밥 한 그릇을 말간 눈으로 바라보더군

그렇게 진부한 결핍으로

아니, 결핍의 이데올로기로

내가 죽어가는 동안  

실체적 밥은 네 소관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너는 마지막으로 밥에 대해 말하고 돌아섰어

 

네가 떠난 뒤로

밥그릇에도 숟가락에도 푸른곰팡이가 슬었어

쌀독에 우글거리던 벌레는 이내 날개를 달았지


그렇게 진부한 결핍으로 휘청거리며

만약 네가 돌아온다며

나는 이제 너에게

푸른빛과 날개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너와 함께 어떤 꿈을 꾸면서

대독 같이 숨 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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