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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십이월 Aug 18. 2022

겸허한 겁쟁이

두려움에 대한 통찰 


겸허한 겁쟁이

두려움에 대한 통찰 




살아보니 세상에는 그리 놀랄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별 것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나고 죽는다. 길게 살아 봤자 백 년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고 그 사이에 무엇을 했던 빈 육신만 남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 없고,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깜짝깜짝 놀랄 일도 무섭고 두려울 일도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순간순간 세상이 무섭고 살아볼수록 세상살이가 두려웠다. 어리석었던 것일까?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욕심 때문일까? 



주역 64괘의 괘사는 모두 알 듯 모를 듯 많은 뜻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 重雷震(중뢰진)의 괘사는 두려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震(진)이라 亨(형)하니라 震來(진래)에 虩虩(혁혁)이면 笑言(소언)이 啞啞(액액)하리니 震驚百里(진경백리)나 不喪匕鬯(불상비창)하나니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형국이다. 떨쳐 일어나야 한다. 천둥이 칠 때 깜짝깜짝 놀라야 웃음소리가 껄껄거릴 것이다. 천둥이 백리 밖에까지 놀라게 하지만 국을 뜨는 국자와 울창주를 잃지 않는다.”* 


여기서 국자는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도구이고 울창주는 제사 때 올리는 술이므로, 不喪匕鬯(불상비창)은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두려워해야 복을 받는다(恐致福也공치복야),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닦고 살핀다(恐懼脩省공구수성)라는 해설도 뒤따라 나온다.



늘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는 소심한 성정에 대해 이 괘사는 그럴듯한 변호가 되어 준다. 온갖 것에 겁을 먹고 지나치게 조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대범을 가장한 오만과 둔감보다는 낫다고.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이다.  내가 생겨나 살고 있는 이 세상, 자연과 인간과 사회와 만약 있다면 신이나 정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까지도 포함한 이 세계에 대해 내가 표해야 할 성의(誠意) 같은 것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우연에 의해 개인의 삶과 세계의 방향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라. 그러면 그 어느 종교의 성전에 들어선 것보다 숙연해지고, 조짐을 찾아 몸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미지와 불가지의 영역에서 넘어오는 낯선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고 두려워하는 겸허한 겁쟁이로 살고 싶다.     



*『주역 강설』(이기동 역해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2010년 3판 1쇄) p.690








족(足)



냄새 고약하지?

마늘, 생강 통째로 쏟아 넣고

대파 한 단을 뿌리째 넣어줘도

고약한 냄새 가시지 않을 거야.

향내 나는 약재를 한 움큼씩 뿌리며

살살 달래 줘야 해.


그 비둔한 몸뚱어리를 떠받치던 고단한 시간들을

그 좁고 누진 거처에 진동하던 악취를

그 지루한 기립과 초조한 답보를

오래오래 달래줘야 해.


삼겹으로, 오겹으로 겹겹이 쌓인 잉여

그 굴욕의 잉여 아래 짓눌리고 일그러져도

도살의 순간까지 우직하게 버텨낸

뭍짐승의 마지막 자존심을

뭉근하게 달래서 경건한 칼질로 해체해야 해.  


첫 칼은 망설이지 말고 깊숙이 꽂아.

존재와 실체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지.  

그다음 칼은 미련을 두지 말고 짧게 꺾어 줘.

좌절과 변절 사이를 정확하게 갈라 내야지.

고기를 저밀 때는 칼날을 슬그머니 밀어 넣어.

밀고 당기며 여리고 질긴 숨결을 거슬러 가야지.


뼈는 빠짐없이 추려서 바닥에 깔고

얄팍하게 저민 고기를 가지런히 올려서

빈틈없이 살뜰하게 덮어줘야 해.

무덤을 짓듯이 장례를 치르듯이

엄숙하게 접시에 담아내야지.

 






무섭다



               1


말 한마디

내 안에 들어와 둥지를 틀더니

새끼를 치고 일가를 이뤄

때마다 일가친척 불러 모아

지지고 볶고 대소사를 치른다.


태초의 말 한마디

네겐 별 뜻이 없었으니 악의도 없었으리라.

고의도 아니었고 선의조차 없었겠지.


내 안에서 일가를 이룬 말들은

이미 네 것이 아니고 세상 것도 아니니

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방계의 의미는

어느 누구와도 소통되지 않는다.



               2


나는 세상이 무섭다.

서늘하게 등골을 쓸어내리는

세상의 바람이 무섭다.

악의 없이 교차하는 우연이 무섭고

악의로 가득 찬 중립이 무섭다.

악의 없이 깊어가는 곡해가 무섭고

악의로 똘똘 뭉친 명징이 무섭다.

살아볼수록 무섭다.


나는 세상이 무섭다.

느닷없이 발밑 내려앉는

세상의 무게가 무섭다.

寸鐵의 진실이 무섭고

진실의 살기가 무섭다.

보편성의 광기가 무섭고

개별성의 병리가 무섭다.

오금이 저리도록 무섭다.


나는 세상이 무섭다.

순간의 불가역성에 등이 굽고

무한의 순환에 머리가 센다.  

나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

세상 깊이 파고들어 간다.

눈 가리고 귀 막고 파고들어 가

세상모르고 늙어간다.



               3


자꾸만 얇아지고 있다.

뇌가 얇아지고

심장도 얇아지고 있다.

작년에는 명함만큼 얇았는데

이제는 성경 책장처럼 얇아졌다.

앞면에 지은 죄가 고스란히 뒷면에 어른거리니  

그 죄는 어느 면에서 사해주려나?


밤이면 종이처럼 얇아진 내가  

바시락 바시락

뒤척이는 소리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다.

바람만 불면 푸드덕거려서 창문을 닫았지만

한숨만 쉬어도 풀썩이며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자꾸만 얇아지고 있다.

내 이름도 얇아지고

내 시간도 얇아지고 있다.

이렇게 얇아지다 결국

그림자처럼 바닥에, 벽에

착 달라붙어 버릴지도 모른다.

계단을 만나면 차곡차곡 꺾이겠지.


밤마다 얇아진 내가 그림자 위에 누워

몽실몽실 부푼 꿈을 꾼다.

그러다 어느 볕 좋은 아침에

그림자처럼 얇은 내가 내 그림자와 아주 포개져

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부자리 위에 검은 얼룩으로 달라붙어 있으면

어느 억센 팔이 확 거둬다 푹푹 삶아버리겠지.







일진(日辰)



새벽녘에 운수를 떼어보니

2월 매조에 비 영감이 떨어졌다.

임이 오시려나?

반가운 손님처럼 들르시려나?

아침부터 까치는 극성맞게 울어댄다.


까치는 전생에 포한이 많은 짐승인가 보다.

까악 까악 허공을 향해 포악을 부린다.

누구라도 걸려들면 드잡이를 하겠다고

기억의 봉인이 풀린 까치는

수시로 때때로 진저리를 친다.  


온종일 까치 울어도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점심 녘에 소낙비 지나갔다.

손님같이 지나갔다.  


저물녘에 운수를 떼어보니

1월 송학에 흑싸리 껍데기가 떨어졌다.

소식이 있으려나?

편치 않은 소식이라도 전해오려나?

해 지도록 까치는 소스라치게 울어댄다.


까치는 기다릴 것 하나 없는 짐승인가 보다.

저리도 살뜰히 둥지만 짓는구나.

누구라도 범접하면 패대기를 치겠다고

까맣게 속 타들어간 까치는

바스락 소리에도 벼락같이 깍깍거린다.


온종일 까치 울어도  

기다리는 소식은 오지 않고

해 떨어진 하늘이 붉었다.

노염을 탄 듯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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