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이런 게 기적이다

by Siesta

마치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크리스티나는 나에게 말했다.


"점심 먹었어? 나는 지금 빨리 점심 먹고 아기 친구에게 맡겨놓고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해."


내가 으깬 감자를 받아먹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물었다.


"네 아기야? 정말? "


크리스티나는 나를 조금은 어색한 듯이 보면서 말했다.


" 어, 1살 됐어. 이름은 보리스야."


독일은 미혼모에 대한 어떤 사회의 선입견이 없다.


크리스티나는 19살에 이 아이를 혼자 낳았다.


18살 때 사랑에 빠진 한 학생과의 사이에서 마든 아이이다.


아기의 아버지가 아이의 부양을 거절해서 크리스티나는 호자 키울 것을 결심하고 19살에 아이를 낳았다.


" 공부하면서 또 일하면서 아기를 키우는 게 어렵지 않아?"


나의 질문에 이 친구는 대답했다.


"나는 독일사람이니깐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지만 항상 독일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이런 상황에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잖아. 하지만 독일정부는 나에게 큰 집도 무료로 주고 아이의 유아원비도 보조하고 있어. 내가 아르바이트할 수 있도록 일도 알선해 주고 한 달에 400 마르크씩 육아비로 정부에서 보조가 되고. 또 차를 사면 세금이 감해지고... 내가 공부를 하면서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많은 혜택을 주고 있지...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제도가 없는 나라들이 더 많으니깐. 나는 감사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친구의 감사의 증언에 나는 다시 한번 선진국이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상황을 감사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정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리스티나는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아기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나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적은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 6시에 우리 집에 와. 같이 저녁 먹자"


나는 종이를 받아 들고 말했다.


" 나는 부엌이 없어서 아무 요리도 못해갈 텐데... 그냥 빈손으로 가도 돼?"


크리스티나가 물었다.


"부엌이 없다고? 지금 일하러 가야 하니깐 있다가 우리 집에서 자세한 이야기 하자. Chuess (안녕)"


우리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어 나는 독일 유학하는 동안 이 친구와 함께 모든 마음의 고민과 어려운 일들을 상의하며 생활했다.


나는 이런 게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친구가 부활절 방학에 학생식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마치 누군가 나를 위해 각본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축복의 만남들이 이루어지는 것들이 기적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은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 보물을 많이 발견하는 사람들이 잘 산 인생이다."


나는 걸어서 나의 다락방까지 왔다.


커다란 3층집이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거세게 불어 닥치기 시작하는 차가운 바람에 다락방 창문들이 덜컹거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기찻길에는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 항상 조심조심... 말도 행동도 조심... 여자니깐 절대로 함부로 밖에 나 다니지 말고..."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마음껏 해 보면서 살고 싶었다.


여자들의 인생이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좌우되는 조선시대의 말도 안 되는 유교적 발상에서 벗어나서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인생을 내가 선택한 남성과 아니면 남성이 없이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나의 다락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5시 반이 넘어 나는 크리스티나의 집으로 가기 위해 층계를 내려갔다.


층계를 내려가면 바로 복도가 있고 복도의 가장 처음 있는 곳이 화장실이었다.


이때 화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이 집의 막내아들 홀거가 나왔다.


완전히 발가벗고 수건 하나 들지 않고 목욕탕 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얼른 층계 쪽으로 뒤 돌았다.


홀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집에 계셨군요...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너무 창피해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독일의 "알몸"에 대한 개념은 대한민국과 많이 다르다.


사실 유럽의 나체의 개념은 아시아 나 미국과도 많이 다르다.


오래전부터 예술과 철학으로 인간의 본체성에 많은 글과 그림들이 나온 이 오래된 문화에는 나체는 "사람이 태어난 본연의 상태"로 창피할 것도 없고 가릴 것도 별로 없다.


사실 이제 오래 유럽에 사니깐 나도 이런 문화가 더 편하다.


이젠 나도 해수욕장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고 수영복을 갈아입는 유럽 아줌마가 되어 있지만 그때 내 나이는 23살 그리고 바로 한국에서 간지 이틀 지난 때이기 때문에 25살 된 젊은 독일 남자아이가 완전히 쌩 알몸으로 나와 마주쳤을 때 나는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다.


복도를 삐걱삐걱 홀거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집으로 가기 위해 나는 도망 나오듯이 이 집을 빠져나왔다.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홀거는 8형제 중에 막내이다.


어머니는 매일 일하러 나가셨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아이는 8명의 남자형제들과 항상 집에 있었다.


목욕하고 옷을 입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항상 지낸 것이다.


나는 우리 네 자매와 어머니만 있던 우리 집을 떠 올렸다.


아버지가 집에 계신 날은 조심하면서 옷을 다 입고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우리 다섯 명의 여인들만 집에 있을 때는 빨가벗고 집을 왔다 갔다 하던 때도 많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내가 더 이상 로레나의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가 빨가벗고 왔다 갔다 해서만은 아니다.


공부를 하러 왔으니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공동생활을 해야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 이외에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대학공부...


그리고 나는 독일의 젊은 지성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준비하는지 알고 싶어 독일까지 온 것이다.


홀거의 알몸사건 이후 나는 Wohngemeindschaft (대학생 공동 주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크리스티나의 집에 도착했다.


크리스티나의 집은 마당이 있는 19세기 유겐트 스틸 건축 양식의 큰 집이었다.


이런 집을 정부에서 공짜로 빌려주다니...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삐걱 열었다.


벌써 많은 학생들이 집에 가득 모여 있었다. 부활절 방학에 집에 가지 않은 친구들이 모여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나를 반기며 소개했다.


"어제 한국 서울에서 날아온 우리의 새로운 친구를 소개한다. 이름은 시니고 9월부터 컴퓨터 시각 커뮤니케이션 과에 입학해 공부할 학생이다."


방에 모여있던 열대명의 학생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질렀다.


모두 벌써 와인을 한잔씩들 마시고 있었다.


피터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 독일 남학생이 나에게 와인잔을 건네어주었다.


"나는 건축공학과 2학년이고 퀠른에서 왔어. 앞으로 학교에서 자주 보겠다."


이렇게 유학 온 지 이틀 만에 나는 독일 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의 새로운 삶의 장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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