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이렇게 모두 한자리에 모인 독일 학생들과 내가 유학 온 지 둘째 날부터 섞여서 마치 오랜 친구처럼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독어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을 모두 예술가로 둔 나는 유럽의 문화가 어색하지도 않았고 낯설지도 않았다.
크리스티나가 내게 다가와서 바닥에 같이 앉았다.
바닥에 두꺼운 카펫들이 깔려 있는 독일의 방들은 바닥에 앉아 있기가 좋았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물었다,
" 아까 부엌이 없다고 했지? 어디서 살고 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 로레나라는 분의 다락방에 살고 있어. 이 분은 방을 빌려주시는 일을 하시고 계신 문이야. 외국학생 사무실에서 소개받아서 계속 편지로 연락하다가 이 선생님의 다락방을 빌렸어."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었던 그 시절에 유일한 소통방식은 어마어마하게 비싼 유선 전화나 아니면 독일까지는 10일 이상이 걸리는 편지 소통 방법밖엔 없었다.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탈인 시대가 되었지만 이 당시엔 가치 있는 정보를 얻는 일은 요즘처럼 쉬운 일이 아닌 시대였다.
크리스티나가 따듯하고 깊은 갈색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한번 네가 살고있는 곳에 가서 보고 내 의견을 말해 주어도 될까?"
나는 마치 친 언니처럼 친절한 이 아이에게 말했다.
"물론이지. 그렇게 해 주면 너무 고맙지"
"나 이제 아기 재워야 할 시간이니깐 잠깐 방에 들어갈게"
술잔을 탁자에 올려놓고 크리스티나는 거실의 한 구석에서 한 남학생과 놀고 있던 자신의 아기 보리스 를 안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크리스티나의 친구들은 모두 보리스의 엄마 아빠였다.
19살에 미혼모가 된 크리스티나의 아기를 돌보는 일에 모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나가 한참을 울고 있는 아기와 실랑이를 하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나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조카 2명을 가진 나는 한국에서 아기를 보는 일을 해 보곤 했다.
사실 나는 아기들을 별로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아기들이 나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어어 울고 있던 아이들도 내 얼굴을 보면 울음을 그치고 멀뚱멀뚱 신기한 듯이 보곤 했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크리스티나가 지친 얼굴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왜 이렇게 안 자려고 이러지? 보통 때는 더 빨리 잠이 드는데..."
내가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엄마가 자기 말고 딴 사람들이랑 있는 게 싫어서 그렇수도 있고..."
내가 다가가서 아기침대에 누워있는 보리스를 쳐다보자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아기는 눈물을 거짓말처럼 뚝 끈 쳤다.
크리스티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원래 내가 한국에서 별명이 아기 최면사였어... 같이 재우자."
나와 크리스티나가 같이 한방에서 크리스티나는 아기를 쓰다듬고 나는 한국어로 자장가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다.
오페라 가수생활도 하셨던 어머니의 한국 자장가 목소리가 세포 속에서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장가를 불렀다.
"우리 아기 착한 아아기 엄마 품에 잠들어. 하늘나라 아기 별도 엄마 품에 잠들어"
그렇게 몇 번을 연속해서 속삭이듯이 한국말로 자장가를 부르자 보리스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의 품 속에서 나의 한국어 자장가를 듣던 이 아기는 천천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크리스티나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티나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너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살래?"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매일 같이 이렇게 아기를 쉽게 재우지는 못해... 오늘 아기가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학생들이 모여 와인과 차를 마시고 있던 거실로 돌아왔다.
크리스티나와 함께 살고 있는 볼프강과 도로테가 오븐에서 감자 Auflauf 감자 오븐 요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부엌으로 학생들이 가서 각기 자신들이 가지고 온 요리들을 꺼내어 거실에 놓고는 금요일 저녁의 독일 학생들의 공동 식사파티가 시작되었다.
의자가 모자라서 각기 접시를 들고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접시와 컵을 들고 바닥에 앉아서 감자 오븐요리와 파스타 샐러드 소시지와 오이피클을 먹었다.
내 옆으로 한 남학생이 와서 앉았다. 긴 금발머리를 한 이 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새로 만들어진 우리 대학교 학과 시각 커뮤니케이션 컴퓨터 학과 들어왔다면서? 내 이름은 마르쿠스고 나는 산업 기계공학과 학생 이아. 나는 서독에서 왔어. 하이델 베르크. 통일이 된 독일의 옛 동독지역에서 공부해 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장학금 ( stipendium bafög )을 신청하고 왔어. 한국은 대학생들이 어떻게 생활을 하지? 예를 들면 너의 이곳 생활은 누가 돈을 내어 주는 거야? 방값과 식비 그리고 학교 등록금 같은 것. 한국도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니?"
나는 이 학생에게 말했다.
" 나는 아버지가 20.000 마르크 (한국돈 10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주시기로 했고 나머지 돈은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벌을까 하고 있어, 하이델 베르크에서 왔다고? 나 어쩌면 하이델 베르크로 9월까지 가 있어야 할지도 몰라. 여기 바이마르에는 하루 4시간짜리 집중 독일어 코스가 없어서 내 비자 연장이 안된대. 그래서 그때까지 하이델 베르그에 가서 집중어학코스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몰라"
마르쿠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독일어를 이렇게 완벽하게 하는데 왜 어학코스를 하러 하이델베르크 까지 가야 해? 그리고 9월에 우리 대학 입학 허가서 ( Zulassung ) 이 있는데 왜 비자를 어학코스로 연장해야 해? 하여튼 간... 외국인 정책이 이렇게 그지 같아서... 독일은 아직도 facism에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야. 내가 외국인 사무실 같이 가서 따져줄까?"
이 의협심에 불타는 독일 공대생은 독일이 2차 대전의 트라우마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아직도 입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독일의 역사적 실수를 수도 없이 학교에서 배우는 이 젊은 세대의 학생들은 그 오류가 자신의 세대에서 모두 그 악명 오명을 벗기를 열망했다.
독일의 국수주의와 지나친 애국정신 등에 반대해서 독일의 젊은이들은 불타는 의협심으로 항상 외국인 학생을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에 대해 전혀 아무런 배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젊은 시대의 의무인 것처럼 많은 젊은 학생들이 이렇게 외국인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
마르쿠스의 친절한 제안에 내가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깐 내가 할 수 있는대까지 해 보고 만약에 하이델 베르크에 가야 한다면 그 도시의 정보를 좀 줘. 만약에 가게 되면 너한테 연락하고 조언을 들을게."
마르쿠스가 미안하고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남자들이 이런 눈으로 나를 보면 정말 불편하다.
길 잃은 강아지를 보는 것처럼 이렇게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작은 동양여인으로 유럽사회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젊음은 많은 감정들을 사랑의 감정들로 착각하며 사랑의 정의를 찾아가는 시간들이다.
그래서 연민도, 동정도, 성욕도, 열정도,... 모두 사랑의 실험정신의 요소가 되는 시기이다.
와인 한잔과 이 짧은 대화가 이 시기에는 갑자기 인생의 절대 동반자를 만난 하늘의 인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들이 바로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심장이다.
라디오에선 "Yellow tree " 노래가 나오고 저녁식사 모임 내내 마르쿠스가 나의 언저리에 있는 것을 의식했다.
내가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해놓고 내가 크리스티나에게 가서 말했다.
" 나 이제 집에 가야겠어. 너무 늦으면 길 못 찾을 것 같아. 아직 지도 보면서 다녀야 하거든... "
이때 긴 금발머리를 뒤로 동여매고 마르쿠스가 내게 다가왔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나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갈 거야. 내일 아침부터 청소해야 해. 나 혼자 집에 남고 집이 엉망인데 이번엔 내가 집 청소 하기로 했거든"
마르쿠스가 크리스티나에게 "저녁초대 고마워 (Danke fuer Abendessen) 그렇게 인사하고는 나보다도 먼저 밖으로 나와서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나는 보호본능이 강한 남자들이 얼마나 집착이 강한 지도 대충 알고 있고 또 사냥꾼 기질을 가진 집착이 강한 남자들의 타겟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대충 문학을 통해 짐작을 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한 나는 게르만들의 강한 집착과 거의 정신병적인 완벽주의 그리고 2차 대전 과도한 애국정신을 낳게 한 보호본능 등도 독일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대충 알고 있던 터였다.
마르쿠스의 보호대상이 되어버린 나는 그 동시에 마르쿠스의 사냥 타깃이 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과도하게 표현한 것이고 보통 하는 말로 마르쿠스는 갑자기 나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만 다섯이 항상 같이 있던 집에서 나는 전 세계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독일 공학대학의 중간에 서있는 "유일한 아시아 여자"로 탈바꿈해 있었다.
구독자 0
하단 고정 영역 > 매거진 다른글 클릭" data-tiara-action-kind="ClickContent" style="-webkit-font-smoothing: antialiased; backface-visibility: hidden; font-family: "Noto Sans DemiLight", "Malgun Gothic", sans-serif; margin: 0px; padding: 0px; text-rendering: inherit; background: rgb(255, 255, 255); border-top: 1px solid rgb(238, 238, 238); bottom: 0px; height: 59px; position: fixed; width: 1423.33px; z-index: 100; display: block; color: rgb(51, 51, 51); font-size: 14px; font-style: normal; font-variant-ligatures: normal; font-variant-caps: normal; font-weight: 400; letter-spacing: normal; orphans: 2; text-align: start; text-indent: 0px; text-transform: none; widows: 2; word-spacing: 0px; -webkit-text-stroke-width: 0px; white-space: normal; text-decoration-thickness: initial; text-decoration-style: initial; text-decoration-color: init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