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나의 독일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벌써 32년 전의 일이다.
도착한 날자가 3월 부활절 방학이었다.
그래서 대학 수업은 없었다.
나의 학기는 9월부터 시작되었다.
3월부터 9월까지 비자를 연장하려면 대학에서 하는 집중 코스 독일어 전문용어 반에 등록해야 했다.
다음날 나는 이 코스에 등록하고 3개월 비자를 1년 비자로 연장하기 위해 외국인 학생사무실로 찾아갔다.
독일의 행정은 정확하고 또 예외나 행정의 부패를 없애기 위해 공무원들을 정직하고 꼰꼰한 사람들을 뽑기로 유명하다.
내가 외국인 사무실로 갔을 때 만난 이 Frau Sauer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이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전형적인 독일 공무원이었다.
내가 이 분에게 비자를 연장하러 왔다고 하자 이분이 내게 말했다.
" 통보를 못 받고 왔군요... 우리 대학엔 올해 집중 코스가 없습니다. 신청한 외국인이 너무 없어서 올해는 열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기다리셨다가 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 돌아오세요"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다시 한국으로 갔다가 올 비행기 값도 없고 이미 독일로 왔는데 독일어 전문용어 반을 9월까지 꼭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 이미 독일까지 왔는데 한국이 바로 옆의 나라도 아니고 방법이 업을까요?"
이 분이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다시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이미 독일어를 거의 완벽하게 하는데 사실 이 코스를 듣지 않아도 대학수업을 다 이해할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비자 연장을 위해 이 등록증이 필요하니 하이델 베르그의 대학으로 가서 등록하고 비자연장해서 공부하다가 9월에 다시 weimar로 오세요."
하지만 지금 저렴한 방도 구한 상태이고 로레나 아줌마도 가족같이 나를 대해 주시고 또 내가 공부할 대학도 이곳인데 이 도시를 떠나 하이델 베르그로 간다는 것도 너무 막막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 이곳에 있는 어학 코스는 무엇입니까?"
"비자를 연장하려면 매일 4시간 이상의 집중 코스반에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 대학은 올해 이 집중 코스반이 없고 1주일에 2번 4시간이 있는 보통 독일어 코스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교환학생들이 많이 듣는 코스이지요. 하지만 1주일에 8시간 수업으로는 비자 연장이 불가능합니다."
나는 하이델 베르그의 집중코스 정보를 받아 들고 외국인 학생 사무실을 나오려고 했다
이 사우어 선생님이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셨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 보인 모양이다.
" 내가 한번 총장님과 상의해 볼게요. 독어를 이렇게 잘하는데 집중코스 못 다닌다고 도시를 옮기는 게 저도 좀 상식적이지 않다고 보이네요. 사실 이곳에서 독어 어학반에 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어를 거의 못하거든요."
성신여자 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이미 독일사람들과 유창하게 독어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괴테 인스티 튜터를 계속 다녔고 또 시간 나는 대로 독일어 회화 클럽에 등록해 독일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외국인 사무실을 나와 나는 나의 다락방까지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빵과 치즈를 사 와서 다락방에서 혼자 먹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7월 이면 나의 비자가 끝난다. 그리고 학기 시작은 9월이다.
끝난 비자로 있으면 아무리 대학 입학서가 있어도 연장이 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창밖에 아직도 서리가 끼어 있었다.
회색의 공기가 독일의 전형적인 우울한 날씨를 창문 너머로 펼쳐 보였다.
점심을 대충 먹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추운 독일의 3월의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일단 나는 대학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대학의 식당 "멘자"로 갔다.
크고 천장이 넓은 이 학생 식당은 학생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으로 위층은 식당 아래층은 카페가 있었다.
부활절 방학이라 식당엔 학생이 별로 없었다.
공대인 이 학교 식당엔 집에 가지 않은 몇몇의 남자 학생들만이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의 중앙에 한 긴 갈색머리를 한 예쁜 여자아이가 한 명 앉아 있었다.
옆에는 아기가 앉아서 이 학생이 주는 으깬 감자를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이 여학생에게로 다가가서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 Guten Tag. 내 이름은 신니야. 어제 한국에서 이곳으로 공부하러 온 학생인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멀리서 보니깐 네가 친구가 돼 줄수도 있을 것 같아서... "
이 여학생은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한국에서 어제 왔다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독어를 잘해? 물론이야 내가 친구가 되어주지. 나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고 옆 도시에 있는 예나 대학의 경제학과 학생이야. 여긴 공대이쟎아"
나와 이 친구 크리스티나는 아직까지도 전화를 하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30년이 넘는 우정이 된 인 첫날의 만남을 나는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천장이 높은 학교식당, 창문이 커서 흐린 독일의 하늘이 주는 꿈같은 안개빛의 조명을 가진 이 학교식당...
이 식당에 홀로 앉아 어린 아들에게 감자를 먹이던 이 친구는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도움을 주는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