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남자

by Siesta


내가 독일에 유학을 갈 결심을 하고 열심히 준비하던 시절 나는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키가 크고 금발에 파란 눈을 한 교수님을 만났다.


이 분은 달걀을 까먹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강의실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지금은 괴테 인스티 튜트의 분식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삶은 달걀을 2개에 500원에 팔아서 가장 저렴하게 좋은 요기를 할수 있는 음식이었다.



내가 가장 선호하던 이 삶은 달걀을 소금 찍어서 열심히 먹고 있는데 키가 큰 40대의 멋진 독일 나자가 내게 다가왔다.


독일말을 아직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천천히 이분을 강의실까지 안내해 드렸다.


이 분은 독일에서 1주일 전에 도착해서 K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면서 가끔 괴테 인스티튜트에 나와서도 강의도 하신다고 했다.


나도 다른 강의실로 가서 그날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이 교수님과 또 마주쳤다.


이 분은 나에게 자신이 커피를 한잔 사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마침 그날은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분을 따라 커피를 마시러 갔다.


공짜로 할 수 있는 독어 회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분은 나에게 자신은 40살이고 독일에서는 독문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한국의 k 대학의 강사로 3년 계약을 하고 한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갈색머리에 파란 지적인 눈을 가진 이 교수님은 나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모든 한국사람 중에서 가장 독어를 잘한다고 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독일로 유학 가고 싶어서 열심히 독어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 가장 좋아하는 독일 작가가 누구야?"



나는 대답했다.


"헤르만 헷세요. 데미안은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어요. 독일의 전통적인 bildungsroman의 대표라고 할 수 있죠. 성장하는 자아와 육체를 그린 독일의 전통적인 문학 양식이요."


이분은 나의 대답에 감동한 듯이 말씀하셨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착한 학생이구나..."


이 교수님은 나의 얼굴을 유심히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나는 한국에 대해 배워야 하고 너는 독일어를 배워야 하니깐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데이트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좀 망설였다.


이때 이렇게 유럽 남자들과 같이 서울거리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되었다.


아직 군사정부가 있을 때의 일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위축되고 "보통 정상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시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멋진 교수님을 독일회화 개인교수로 둘 수 있는 것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우연히 이루어지는 만남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의 일생에는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만남들은 내가 어떻게 계획할 수 없는 운명적인 하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내가 만으로 20세였던 해이다.


나는 또 이 참에 S 대학생에게 "발랑 까진 여자"라는 오명을 듣고 차인 것에 대해 오기가 나서 이분께 말했다.


" 좋아요. 그럼 제 아르바이트가 없는 목요일 오후마다 만나서 데이트해요"



항상 돈이 부족했던 우리 집안의 사정을 잘 아는 나는 월 화 수 금 토 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카페, 주유소, 식당, 과외학습, 인쇄소 교정...



뭐든 돈이 되고 시간에 맞는 일은 다 하던 시기였다.


내가 이렇게 구체적인 요일을 말하자 이분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 그럼 너는 내가 궁금한 모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독어로 들려줘. 너는 독어회화를 할 수 있고 나는 한국에 대해 배울 수 있을 테니깐."


우리는 그렇게 서로 동의하고 "취스" 인사하고는 헤어졌다.


모바일 폰이 있던 때도 아니고 이때의 약속은 이렇게 얼굴을 보면서 목요일 5시까지 돈암동 BB 카페 앞에서 만나. 이렇게 말하고 1주 후에 그곳에 가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톡을 보낼 수도 없고 못 간다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약속은 더욱 신중하고 엄숙한 것이었다.


나는 이분과 그렇게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독일어 개인 수업을 받았다.



점점 더 나의 독어는 완벽해졌고 이 분은 두 사람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점점 나의 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내가 한국 학생들의 독립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 드리고 있었다.



한국의 학생들은 집을 나가 독립생활 할 수 있는가.



아르바이트하는 돈으로 방값을 충족할 수 있는가.



정신적 물질적 독립이 언제부터 이루어지는가...



내가 열심히 설명해 드리고 있을 때 이분이 나의 머리를 감싸고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80년대 한국은 이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였다.


90년대도 이런 분위기 아니였다.


지금은 사회가 많이 달라져서 젊은 여학생이 40대 50대 남자친구와 팡장을 끼고 다녀도 보는 사람도 없고 또 다른 인종의 애인과 길거리에서 키스해도 아마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김흥수 화백의 나이차를 극복한 결혼이 사회의 이슈가 되고 마광수 교수님의 소설이 금지되고 애마부인 시리즈를 사람들이 마치 포르노 영화처럼 몰래몰래 보던 시절이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정말 내가 이렇게 "발랑 까진 여자로 다시 낙인을 찍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가슴도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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