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같이 사랑을 나눈 후에 우리는 마치 전생부터 알던 사이 같은 느낌을 가졌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환경도 세대도 완전히 달랐던 이분과 나는 마치 언어 이전의 문화를 넘어선 환경과 무관한 세대를 초월한 완전한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교수님은 하루라도 나를 잠깐이라도 보지 않으면 삶을 사는 목적이 없어진 사람처럼 마치 그날의 숙제처럼 매일매일 나를 보기를 원했다.
같이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면 우리는 다시 마치 우주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가 되어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 같은 사랑을 했고 그때마다 더욱더 이 교수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깊어져만 갔다.
하루는 이분이 사는 아파트로 다시 들어가는 길에 그곳에 사는 한 부부가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오다가 우리와 마주쳤다.
이 부부는 젊은 부부로 남편은 한국사람이고 부인은 영국 사람이었다.
혼혈인 이 여자아이는 옅은 갈색눈에 갈색머리 그리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어린아이였다.
교수님은 이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몇 분 간 서서 이 부부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좀 멀리 떨어져 이분들과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교수님은 이 분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에 내게로 다가왔다.
" 이곳에 거주하는 부부인데 아이가 5살이 되었대. 너무 예쁘지? 나도 저런 딸을 하나 가지면 소원이 없겠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도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
나는 이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당시 사실 대한민국에서 내 나이 21살이 되면 거의 모든 여자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을 한 번은 해 보는 것이 정상이다.
마치 결혼과 출산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사회에서의 의무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던 때였다.
얌전하게 공부 잘해서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예쁘고 건강한 아들을 낳는 것이 여자의 삶의 목표이며 의무인 것 같은 사회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여자 이전에 무엇이며 사회에서의 나는 어떤 존재로 인식될 수 있으며 그 한계와 가능성들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독일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갑자기 나에게 던지는 이 질문 "아기를 낳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라는 한 남자의 질문에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당황했다.
항상 나는 콘돔을 사용한 성관계를 가졌고 어떤 경우도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
이 말을 듣고 이 교수님의 얼굴은 좀 달라졌다.
우리가 벌써 1년이 넘게 이렇게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이 교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 우리가 같이 살면서 네가 대학을 다니면 안 될까? 만약에 결혼을 꼭 해야 같이 살 수 있다면 결혼하자. "
나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온 " 결혼" "같이 살자"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나와는 다르게 이 교수님은 나와의 멀고 먼 미래까지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차이가 많은 연인들은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어긋날 수 있다.
그때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모험과 경험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떠나고 싶었고 이 교수님은 모험 끝에 만난 사랑에 정착하고 싶어 하던 40대였다.
나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나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는 지금 한 남자에게 매어서 결혼을 하거나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독일로 가서 공부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교수님이 말했다.
" 내가 너와 함께 있는데 왜 독일을 가? 독일을 가도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인간이 사는 곳은 모두 너무 비슷해...
그리고 네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있고 또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야."절대로 내가 찾은 것을 잃어버리기 싫어. "
마치 나의 인생을 자신이 살아본 것같이 이야기하는 이 40대 남자의 말이 나는 거슬리기 시작했다.
" 제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교수님이 어떻게 아세요? 저는 더 넓고 먼 곳으로 가서 제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 나는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지금 찾았어. 절대로 이걸 잃어버리기 싫어. 나와 같이 있어줘 그리고 나에게 예쁜 딸을 하나 선물해 줘. 나와 같이 행복을 찾자."
나는 우리의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날 이후 이 교수님을 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 교수님에게 잘못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절대로 상상하지 않고 시작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피할수록 이교수님은 점점 더 나에게 집착했다.
하루는 내가 정말 완전히 이별을 결심하고 이 교수님의 집으로 같이 갔다.
더 이상 거짓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 앉아 나에게 차를 준비하고 있던 이 교수님께 내가 말했다.
" 저...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저는 한국에서 한 남자와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 남자가 독일남자건 한국 남자건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교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 만나자는 것도 아니에요. 사랑하지만 교수님이 저와 계획하는 미래에 있는 저는 진정한 저의 모습이 아니에요. 그 모습에 맞추어질 수 있는 여자를 빨리 만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 이젠 제가 교수님의 곁을 떠나겠어요."
이 말에 이 교수님의 커다란 파란 눈이 갑자기 슬픔과 절망 그리고 분노가 섞인 눈물을 담은 파란 눈으로 변했다.
나에게 다가와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너무 잔인하다... 너"
"네. 저 원래 잔인해요."
이 교수님은 나를 부서질 것처럼 꼭 안았다.
이미 나의 마음이 완전히 결정을 내린 것을 나의 눈을 보면서 눈치챈 이 교수님은 나를 자신의 심장 속에 꾸겨 넣어버리고 싶은 것처럼 부서질 것같이 꼭 안았다.
"그럼 오늘이 우리 마지막 날이야?"
거의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네"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내게 키스하며 나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슬픔과 두려움이 내 마음에 안개처럼 천천히 덥혀왔다.
정말로 많이 사랑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끝을 선언해야만 했고 이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진정한 사랑과 이 착한 남자의 수긍하는 눈물이 나를 두렵게 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택하는 미래가 이 사람과의 사랑보다 더 가치가 정말 있는 미래일까? 나는 확신하는가'
라는 질문들도 나를 두렵게 했다.
이제 이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도 나를 두렵게 했다.
내가 택한 미래의 불확실함이 나를 두렵게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옷을 입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더 두렵고 슬펐다.
교수님이 나를 보통 때보다 훨씬 더 거칠게 다루었다.
계속 나에게 더 가까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 분의 사랑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아파요"
라고 말하자. 이 교수님은 나의 얼굴에 눈물방울을 뚝 떨어트렸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나에게 더 깊숙이 들어오려고 했다.
땀과 눈물이 나의 몸을 적셨다.
소리를 지르며 나의 몸 안에서 절정에 달았고 나는 그 순간 갑자기 겁이 났다.
'오늘이 생리 며칠 전이지?... 임신하면 어떻게 하지...'
교수님이 나의 몸 위에 시체처럼 누웠다. 숨을 몰아쉬며 이불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 둘의 머릿속의 우주는 분리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머릿속에 일어나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두려움과 슬픔은 그 순간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